결국 너를 위한 것이 되었다.
* 커버그림: 초4 딸의 그림
하지만, 고양이와 같이 사는 생활은 쉽지 않았다. 커텐과 소파가 너덜너덜해지는 만큼 내 마음도 너덜너덜해졌으니까. 그러던 일년 하고도 반이 지난 지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서 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사는게 아닐까?
고양이 꾸미가 이방저방 왔다갔다하는것도 이미 포기한지 오래. 집에서는 항상 식탁과 주방 근처가 나의 최대 행동범위였다. 그런데 불현듯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포기하고 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금손도 아니고 안목이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조금은 내 취향으로 꾸미고 싶어졌다. 과거의 나를 잊고.
너덜너덜해진 커텐을 가장 먼저 바꿨다. 하얀 나비주름커텐으로. 가죽이 다 벗겨져버린 거실소파를 치우고 작은 딸아이 방 침대로 썼던 평상원목을 가져와 거실에 소파로 대신 쓰기로 했다. 더불어 작은 인조가죽의자도 주문했다. 너덜너덜해진 식탁의자도 새로 주문하고 이전 집에서 이사오면서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쳐박아둔 짐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변해가는 거실을 보며 남들처럼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에 만족하던 찰나.
꾸미는 내가 바꾼 것들을 ‘내가’ 먼저 누리기도 전에 다시 자신의 새로운 터전(?)을 를 일구고 있었다. 그것도 세상 편하게....
꾸미, 너를 위한 건 아니었지만, 나의 수고로움은 결국 너를 위한 것이 되어버렸구나. 난 손에 먼지 묻히며 열심히 치우고 닦았지만 넌 참 편하게 모든 걸 누리는구나.
부럽다. 네가.
잘도 잔다.
아이들은 예쁘다고 귀엽다고 난리.
나는 밝은 색 쿠션커버에 털묻는다고 난리.
시작은 나를 위한 것이었지만 마지막은 너를 위한 것이 된 집 정리.
마음비움이라는 정신적 미니멀리즘까지도 강제실천하게 만들어주는 너. 아직도 나는 네가 불편하지만, 그래도 가끔 네가 자리를 비워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