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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씨 Dec 11. 2020

집은 넓어졌지만 난 좁은 곳에 살지

누구를 위한 집일까?

* 커버그림: 초4 딸의  그림


약 2년 간에 걸친 남편과의 주말부부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대전에서 다시 같이 살게 되었다. 서울에서만 살다가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됐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조금 심란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아빠와 같이 살게 되었다는 것에 행복해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감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넓은 평수의 집을 얻을 수 있게 되어서  집에서 누리는 행복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살짝 있었다. 좁은 집에 있던 가구들이 집 곳곳을 채워도 집이 뭔가 휑해보이는 느낌까지 들었다. 어쨌든 뭔가 여유로운 생활이 보장되어있는 것만 같은 기대감에 조금은 행복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으니, 그건 며칠 후 데려온 남편의 고양이 꾸미였다.


꾸미의 짐들도 만만치 않았다. 거실 한쪽에는 캣타워와 스크래치가 자리를 차지했고 방 하나에는 꾸미의 화장실과 놀이공간이 확보되었다. 자연스럽게 그 방은 남편의 운동 및 작업 공간이자 꾸미의 방이 되었다. 안방은 침대와 옷장이 있었고 다른 방 두 개는 아이들에게 각각 하나씩 주어졌다. 그리고 남은 건 하나로 이어진 거실 겸 부엌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요리도 할겸 식탁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낮시간에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신랑은 출근을 하면서 나와 꾸미가 오랜 시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 마이 갓. 주말부부 하면서도 꾸미와 한 공간에 있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나였기에 이 모든 조건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꾸미도 이제 어느 정도 성장했기에 갑자기 달려든다거나 빠른 속도로 여기저기 뛰어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꾸미가 호랑이라도 된 것 마냥,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던 건 사실이다.


오히려 나보다 여유있는 건 꾸미였다. 나를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의아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유유자적하게 베란다에서 광합성하는 꾸미, 편하게 쇼파에서 노는 꾸미가 오래전부터 이 집의 주인이었고, 나는 손님 같았다.


거기서 뭐하슈?
소파쿠션은 내 전용 방석
베란다에서 광합성하는 이 기분이란. 이사오길 잘했어.


동거하게 된 몇 주 동안 나는 안방에서 생활했다. 아이들이 올때까지 안방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 나도 안다. 그것이 막연한 공포심이라는 것을. 하지만 중요한 건 그걸 내가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안방으로 ‘피난’을 와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안방 밖 생활을 시작했고, 정착한 곳은 바로 식탁이었다. 대전으로 오면서 상대적으로 넓은 집에 살게 됐지만, 내가 확보한 활동공간은 겨우 부엌정도. 고양이가 오히려 집의 주인이라고 하는게 맞을거다(내 생각이다...)


하지만, 그곳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꾸미는 식탁위로도 훌쩍 점프해서 올라오기도 했고 떡하니, 식탁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편하게 잠들기도 했다. 가끔은 식탁의자마저 스크래치가 되기 일쑤였다. 식탁 옆에 있는 피아노 의자는 꾸미가 낮잠자는 곳이 되었고 식탁 의자옆에서 마음편하게 그루밍도 즐기는 그녀였다.

식탁옆에서 하는 그루밍은 힐링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그저 여기서는 눕고만싶다.
모든 걸 내려놨다...

동물이기 때문에, 고양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남편. 그래도 나는 내가 자리잡은 곳을 어떻게든 지켜내려 노력했다.


고양이로부터 야생을 배운다.
날 깨우는 생존본능


그렇게 그녀(꾸미)와 나는 서로 각각의 영역표시를 열심히 해나갔다. 가끔씩 그 공간은 겹치기도 하고 그녀가 내 공간에 아무런 말 없이 와있기도 하지만,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바라볼 뿐. 분명 넓은 곳으로 이사왔는데 내 행동반경이 고만고만한 건 기분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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