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남자랍니다(1)

스드메 정하기 ①

by 눅눅한과자





“00이 드디어 9월에 결혼한대!”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며 내가 말했다.


“진짜? 코로나 때문에 몇 번 연기하더니 드디어 하네. 그래서 드레스는 어디 걸로 했대? 오빠한테 엄청 물어봤잖아”


아내가 대답했다.


“J□□라던데? 거기 웨딩슈즈 파는데 아니야?”


“잠깐.... 어? 이제 드레스도 하나 봐, 블로그에 나오네! 여자친구분이 트렌디한데? 엄청 열심히 찾아봤나 봐. 저번에 웨딩촬영도 그렇고.”


“그러게, 우린 처음에 아무것도 몰랐는데.. 웨딩박람회 갔을 때 기억나? 당황에서 아무것도 못 물어보고 온 거ㅎㅎ 그때......”


벌써 몇 번이나 이야기한 주제였지만, 우린 또 신나게 수다를 시작했다.




결혼식(장 예약일)까지 남은 기간은 약 9달. 회사 점심식사 약속도 당일이나 그 전날 잡을 정도로 즉흥적인 나에겐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먼 미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결혼식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일찍 준비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왔고, 조언해 주는 사람마다 준비기간도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던 나는 가장 가까운 날짜의 웨딩박람회에 참가신청을 해놓고 여자친구를 데려갔다. 한 호텔의 전시장을 통째로 쓴 대규모 박람회. 입장부터 늘어선 긴 줄에 언뜻 보아도 전시장 안의 인구밀도는 이미 나의 정서적 한계치를 크게 초과하고 있었다.

“웬 사람이 이렇게 많아? 요새 혼인율 역대 최저라며!” 누군가가 정확히 내가 하고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냈다. ‘그러게요. 하지만 댁이나 나나 그 사람 중 하나입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정신이 없었다. 드레스, 스튜디오, 메이크업 샵은 물론 한복업체, 폐백업체, 이바지 음식(그땐 뭔지도 몰랐던) 업체, 양복업체에 신혼여행 준비를 위한 여행사까지. 디저트 박람회에 가면 디저트만 팔고, 커피 박람회에 가면 커피와 관련 기구만 팔지.. 이건 웬 만물상? 아직 무슨 준비가 필요한지도 모르는 우리는 20분 만에 구경을 포기하고 상담을 예약한 웨딩플래너를 찾아갔다.


하지만 우린 상담내용에 크게 실망했다. 결혼준비 순서와 필요 리스트에 대한 일목요연한 정리와 설명을 기대했으나, 플래너의 설명은 홈쇼핑의 제품 소개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지금 계약하시면 원래 000만 원인데, 10% 할인해 드려요”

“이 샵 어떠세요? 여기가 요새 인기 있는 데에요”

“국산 드레스와 수입 드레스 중 어느 걸로 찾으세요?”......


우린 깨달았다. ‘웨딩 박람회는 우리 같은 초보들이 올 데가 아니구나. 알아볼 만큼 다 알아보고 최종 선택을 하기 위해 오는 곳이구나’. 그나마 수확이 있었다면 한 장으로 된 결혼준비 목록표를 손에 넣은 것이랄까.

박람회의 충격(?) 때문인지 우리는 2주간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회사일도 바빴고, 뭔가를 다시 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소강상태를 깨뜨린 건 여자친구였다. 이번엔 웨딩컨설팅 업체에 방문예약을 해놨다 했다. 우리처럼 뭔가를 알뜰살뜰 준비하고, 비교 검색하는데 취약한 커플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준비하는 게 나을 것 같단다.

그녀가 선택한 곳은 호텔 결혼식만을 전문으로 하는 청담동의 한 웨딩업체. 협소한 엘리베이터와는 달리 샵은 널찍하고 깔끔했다. 독립된 방에서 웨딩 플래너를 기다리며 미리 준비된 다과를 먹고 있자니 ‘이래서 돈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윽고 시작된 상담. 플래너는 일반적으로 결혼준비엔 어떤 항목들이 포함되는지,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고 그 후엔 우리가 궁금한 걸 물어볼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결혼식을 위해선 준비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웨딩 플래너가 도와주는 부분은 그중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뿐이라는 걸. 한 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우리는 상담료를 지불한 뒤 샵을 나섰다(상담료는 나중에 그 업체와 계약하면 전체 비용에서 빼준단다).


의견을 물어보고 말 것도 없었다. 여자친구의 표정에서 여기랑 계약해야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나도 딱히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다른 업체 대비 비용이 조금 비싸다곤 하지만 이왕 하는 결혼, 대접받으며 여유 있게 준비하고 싶었으니까. 다만, 막상 가(假) 견적서를 받았을 때 잠시 움찔한 모습을 숨기긴 힘들었다.



웨딩 컨설팅 업체의 상담실. 박람회에서 시달리고(?) 나니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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