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남자랍니다(2)

스드메 정하기 ②

by 눅눅한과자




스드메는 처음 견적 받은 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생각보단 비용이 조금 높다는 말을 곁들이며 슬쩍 여자친구

의 의사를 떠봤으나 ‘이 정도면 괜찮지 읺아?’라는 그녀의 한마디에 더 이상 가타부타 않기로 했다. 이미 결혼식장을 정하는 과정에서 한 번 기분이 상했다는 걸 알기에 심기를 더 거스르고 싶지 않았고, 나 또한 은근히 결혼식에 대한 욕심이 있었으니까.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한 건 상담 직후인 8월 무렵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왜 결혼식 준비가 수개월, 길게는 1년까지 걸리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결혼준비가 오래 걸리는 건 스드메 중 ‘스’, 즉 스튜디오 촬영 때문이었다. 스튜디오 촬영을 한 결과물로 청첩장을 돌리고 앨범도 제작하는데, 그 촬영을 위해선 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도 해야 한다. 따라서 흔히 ‘스드메’라고 하지만 결혼준비 순서는 결국 ‘드메스(드메)’*가 되는 것이다 (번거로운 과정 때문에 요샌 스튜디오 촬영을 생략하는 커플도 많다고 한다).


*[참고] ① 촬영용 ‘드’ 레스 선택 및 가봉→ ② 촬영 ‘메’이크업 샵 선택 → ③ ‘스’튜디오 촬영 → ④본식(결혼식) ‘드’ 레스 선택 및 가봉 → ⑤ 본식 ‘메이크업 샵 선택’




우리는 스튜디오 촬영도 선택했기에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배정된 플래너와의 연락은 여자친구의 몫이었다. 딱히 담당을 정하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예비신부’님께 연락이 가는 것을 보니 그것이 일반적인 것 같았다. 매사 대충대충 허술한 내 성격을 생각하면 천만다행이었지만 여자친구는 못내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인터넷 후기를 보면 대부분의 예비신부들은 플래너에게 ‘실장님~ 실장님♡’ 하면서 절친이 되는 것 같던데).



가장 먼저 한건 업체 고르기. 처음 상담받았을 때는 가(假) 견적을 받기 위해 특정 업체를 고르기 전 원하는 등급(?)을 정해야 했다. 웨딩 컨설팅 업체와 제휴된 수십 개의 업체들이 마지 대학입시 배치표처럼 나열돼 있었고, 위로부터 티어(tier) 별로 칸이 나눠져 있었다. 가장 높은 티어에는 결혼준비 초보인 나조차도 많이 들어본 브랜드들이 있었다. 대개 ‘연예인 00가 선택한 스튜디오(또는 드레스, 메이크업샵)’라고 광고하는 곳들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격대를 물어봤으나 바로 포기하게 된 곳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마음의 소리와 예산 사이에서 고심 끝에 타협점을 찾았다. 입시와 비교하면 1등급 후반에서 2등급 초반 정도 되려나? 여자친구는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최고가 브랜드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결혼식장을 나름 합리적인 가격대로 맞춘 상황에서 나머지가 최고급이면 오히려 우스울 것 같다 말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시간을 가지고 SNS를 뒤졌다. 혼란스러웠다.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 단기간 대량의 정보를 비교·분석하는 일은 아무리 내 결혼이어도 피곤한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데이트 겸 카페에 나란히 앉아 같이 평가작업을 했으나 그것만으론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각자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가서도 짬을 내어 수시로 검색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과정이 즐길 수만은 없는, 일종의 의무감을 동반한 일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 둘 다 그다지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란 점(이런 일에 에너지를 무한정 쏟을 만큼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이었다. 주요 브랜드 몇 개만 비교해 보고 그 안에서 제일 괜찮은 곳을 고르다 보니 스드메 업체 모두 일주일 안에 고를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열정(?)이 넘치는 커플들은 웨딩플래너가 추천해 준 브랜드 안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추가 리스트를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본인들이 직접 업체를 알아보는 등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면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는 것이다. 세심하다, 여자마음을 잘 알아준다 라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어온 나였지만, 결혼준비에 뛰어드니 여자친구와 비교하면 이런 둔탱이에 유행에 뒤처진 인간이 있나 싶었다. 브랜드 공식홈페이지와 네 x버 블로그부터 열심히 뒤적여 본 나. 생각보다 정보가 없길래 툴툴거렸더니 이런 정보는 인 x 타 그램으로 찾아봐야 한다고 여자친구가 친절히 알려주었다(비록 그녀의 계정도 게시물 하나 없는 검색용이었지만).



하지만 인 x타를 봐도 정신없긴 매한가지. 세 종류의 상품(스드메)을 브랜별로 비교하다 보니 다 비슷비슷, 그게 그거인 것 같았다. 일단 스튜디오는 비교적 결정하기 쉬웠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으니까. 보정이 들어갔든 빛조절이 들어갔든 그냥 사진이 예쁜지 아닌지만 판단하면 되는 거다. 물론 모델의 외모에 따라 편차야 있겠지만 배경이 과한지, 색감이 너무 밝거나 어두운지, 포즈 등 콘셉트가 과하거나 너무 단순하지 않은지 등은 별다른 센스와 지식 없이도 선택 가능한 범위였다.



여자친구는 나름 확고했다. 주인공이 너무 강조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물이 화면에 꽉 차면 마치 ‘나 이렇게 예뻐요’라고 뽐내는 느낌이 든다나. 자기(와 남자친구)가 연예인도 아닌데. 배경과 인물이 적당히 어우러지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주변풍경이 너무 요란한 것도 정신 사나워 싫다 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의아했지만 막상 각자 선택한 결과물을 비교해 보니 의외로 우리 둘은 취향이 비슷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미(美)에 대한 기준은 누구나 있다. 다만, 그 이유를 정확히 말로 표현하고 못하냐의 차이일 뿐이다.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사진이 예쁘다와 아니다 정도를 본능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고, 여자친구 같은 사람은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여러 커플의 샘플사진을 보며 가장 느낌이 좋아 보이는 업체를 골랐다.



하지만 단 이틀 만에 정한 스튜디오와 달리 드레스와 메이크업 샵은 사진만 보고 고르기가 어려웠다. 반드시 처음 정해놓은 시간(일주일) 안에 선택을 끝낼 필요는 없었지만, 시간이 더 있어도 고민되긴 매한가지라는 생각에 얼른 해치워버리기로 했다. 마치 대학교 리포트 과제처럼, 기한 내에 처리해야 될 회사 일처럼. ‘인생최대의 쇼핑이니 즐겨라’라는 지인의 말과 달리 우리가 이 과정을 하나의 부담스러운 '일'로, 과업(課業)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나고 나서였다.


제목 없음.png 교외의 한 카페에 가서도 검색은 계속됐다. '노트북이라고 가져올 걸'이란 말과 함께 잠시 여자친구가 자리를 비운사이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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