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남자랍니다(3)

스드메 정하기 ③

by 눅눅한과자


스튜디오에 이어 결혼 준비의 꽃이라고 하는 신부 드레스를 고를 차례. 일단 직접 방문하고 싶은 샵을 2,3군데 정하면 하루 날을 잡아 모두 돌아보고(이걸 ‘드레스 투어’라고 한다) 어디서 드레스는 맞출지 정하는 과정이란다. 그런데 후보군을 고르기가 애매했다. SNS를 통해 검색한 드레스는 실제로 누군가가 이미 셀렉(선택) 해서 착용했거나, 앞으로 셀렉이 될 수도 있기에 우리가 방문할 때쯤엔 없을 확률도 있다. 즉, 특정 드레스를 기준으로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이 브랜드가 전반적으로 괜찮아 보인다’라는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샵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옷 한 벌 안 사본 나에게 모니터 상으로 남이 입은 디자인만 보고 여자 드레스를 고르라니... 감이 오질 않았다. 남자는 신부가 드레스 입고 나왔을 때 ‘와!! 예쁘다!!’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기계적으로 마우스 휠을 오르락내리락, 의무감에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한참을 보다 보니 브랜드마다 묘한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내 나름대로 기준을 만들어서 우선순위를 매겨보았다. 그리고 데이트 겸 스드메 선택을 위한 우리만의 중간점검 날, 여자 친구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추천받은 업체 중에 R과 C가 제일 괜찮아 보인다, 둘 다 내가 생각하던 전형적인 웨딩드레스의 모습이다, 너무 화려하지 않고 심플하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이 고급스럽다, 날씬한 네 체형에 잘 어울릴 것 같다, 사진만 봤을 땐 R이 더 마음에 드는데 일단 비슷한 느낌이어도 두 군데는 돌아보자".....


스튜디오를 선택할 때 ‘그냥 여기 사진이 예쁜데?’, ‘여기 느낌 좋다~’ 정도로 쿨하게 말하던 내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이번에 내가 얼마나 많이 공부(?)를 해 온 건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직장상사에게 보고할 때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도 별로 긴장하는 성격이 아닌 나지만, 내 의견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 중인 그녀의 침묵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도 비슷한 생각이라는 답을 들으며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사실 데이트하기 전 중간중간 여자 친구가 메시지로 각종 링크를 보내왔으나 회사 일을 핑계로 답을 미루다 한 번 혼난! 적이 있다).


그렇게 내가 고른 두 곳에 수입 브랜드인 K까지 추가하여 총 세 곳의 샵을 방문하기로 했다. 앞의 둘은 모두 국내 브랜드로, 수입 드레스도 한 번쯤은 입어보고 싶다는 그녀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였다.


메이크업 샵 고르기는 더 어려웠다. 애초에 여자 메이크업에 대해 잘 아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일단 남자 메이크업은 고려 대상도 아니다). 게다가 아무리 사진을 비교해 봐도 모델이 예쁜 건지, 사진 보정이 잘 된 건지, 화장이 잘 된 건지 분간이 불가능했다. 그냥 ‘느낌 좋은’ 샵 몇 개를 추리고 여자 친구에 솔직히 말했다. 도저히 모르겠다고.


반면 여자친구는 한 시간도 고민 안 하고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평소에 진한 화장을 안 하는 타입이라 얼굴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데를 고르면 된다나? 갑자기 부담이 확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자친구 의견부터 물어보고 찾아볼걸...


그렇게 일주일 - 겨우 그 정도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고민을 한- 만에 다시 웨딩플래너를 만났다. 우리가 스드메 업체를 확정함에 따라 가견적서는 이제 앞의 ‘가(價)’자를 떼어내게 되었다. 다행히(?) 처음과 큰 차이는 없었다. 그리고 총금액의 일부를 계약금으로 납부했다. 스드메 비용은 반반씩 부담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일단 여자친구가 결제하고 나중에 우리끼리 따로 정산하기로 했다.



기분이 묘했다. 데이트를 하든, 여행을 가든, 커플 아이템을 사든 아직까지 연인 간의 더치페이가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여자친구 계좌로의 송금은 어색한 작업이었다.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지만 이것도 결국 하나의 계약임을 처음 실감했다고 해야 하나... 애초에 살면서 연인 간의 계좌번호를 물어볼 일이 몇 번이나 될까. 감상에 빠진 것도 잠시, 남자에겐 그다지 선택권도 없고 남자가 걸치는(?)것도 별로 없는 스드메를 반반 부담하는 문화가 조금은 우습고 억울하단 생각을 잠시 했다(어디 가서 쪼잔하다는 소리 들을까 봐 얘긴 못했지만).




"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스드메 정도면 결혼 준비 도입부였을 텐데"


물을 마시다 냉장고 한편에 붙어있는 스튜디오 사진을 보며 내가 말했다.


" 그러게, 스드메 선택이 메인이벤트라고 생각했다니, 우리도 어지간히 순진했던 거지"


아내가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 그깟 검색하는 수고와 예상보다 몇 푼 더 나온 비용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결혼 준비하며 100번은 한 생각일 거야"


내가 대화를 이어갔고,


" 그러게. 그게 우리 둘에게 온전한 선택권이 있는 유일한, 마지막 항목일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더 더 즐길걸 그랬어"


자조적인지, 나에 대한 책망이 섞였는지 모를 그녀의 묘한 말투에 나는 황급히 저녁식사 메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회제를 돌렸다.


우리의 웨딩 사진첩도 상담실 한편에 비치되어 샘플 역할을 하게 될까




keyword
이전 13화나도 남자랍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