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하기④
비를 피하듯 맞으며 들어온 작은 레스토랑. “우와~~”라는 탄성에 이번에도 내가 그녀의 취향을 저격했음을 알 수 있었다(연애하면서 이때만큼 뿌듯할 때가 없다). 우리만 있는 아늑한 공간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로 장식돼 있었고, 주방이 보이는 커다란 테이블 위엔 꽃잎이 가지런히 뿌려져 있었다. 기대 이상 었지만 만족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그녀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비록 내 생일 기념이지만 널 꼭 한번 여기 데려오고 싶었다고.
우린 한참 사진을 찍고, 수다를 떨며 순서대로 나오는 요리들을 하나씩 맛봤다. 어느덧 테이블엔 디저트와 커피가 놓였고, 난 셰프님에게 눈짓을 보내며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다. 그리고 차에서 반지와 꽃다발을 들고 1층 현관 옆에 서서 창문틈 사이로 실내를 바라봤다. 그녀는 테이블 맞은편 벽에 걸려있는 TV속 영상을 보고 있었다. 내가 제작(을 맡긴)한 바로 그 프러포즈 영상! 적당한 타이밍에 등장하기 위해 3분 남짓한 동영상을 몇 번, 몇십 번씩 돌려봤는지 모른다.
밖에선 여자친구의 옆모습 밖에 보이지 않아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Will you marry me?’라는 문구와 함께 영상이 끝나자마자 나는 곧바로 실내로 들이닥쳤다. 놀랍게도 그녀는 울고 있었다. 당연히 환한 웃음을 짓고 있을 거란 내 예상과 달리. 깜짝 프러포즈와 감동의 울음은 내 로망이었지만, 막상 그 광경을 마주하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짧은 연애기간(몇 번이나 강조했듯이)에 별다른 감동적인 이벤트 없이 자연스럽게 결정된 우리의 결혼이었기에,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의 양이 적었기에 가슴 먹먹한 감정이 그리 크진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황도 잠시, 애써 여유로는 척을 하며 나는 반지를 꺼냈다. 이 정도면 꽤나 성공적인 프러포즈 아닐까란 생각을 하며. 그리고 반지와 함께 오글거려서 도저히 못할 것 같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나랑 결혼해 줄래? 아니, 결혼하자!”
그녀가 이에 (당연히) 응했고, 그때부터 우리의 본격적인 포토타임이 시작됐다. 행여나 디테일한 것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휴대폰의 촬영 버튼을 눌러댔다. 와인 한잔에 빨개진 볼, 단정함과는 거리가 먼 여름옷, 땀으로 헝클어진 머리.. 우리는 프러포즈 D-day를 그렇게 보냈다.
“그땐 왜 운 거야?”
문득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글쎄... 깜짝 이벤트에 감동받은 것도 있지만... 내가 결혼하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던 것 같아. '나도 프러포즈란 걸 받는구나' 라는 느낌? 난 결혼 안 하고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녀가 답했다.
“그럼 반지는 왜 아쉬웠다는 거야? 너무 소박해서?”
“응, 오빠정도 센스를 가진 사람이면 나중에 집에서 뭘 해주든 프러포즈할 때만큼은 가운데 다이아가 박힌, 뭐랄까... 누구나 떠올릴법한 전형적인 반지를 준비할 줄 알았지. 커플링 겸용일 줄은... 생각보다 현실적인 사람이야.”
“내가 박봉(?)이라 그래. 그래도 결혼준비 중 프러포즈가 제일 재밌는 이벤트 아니었어? 갈등도 없었고. 그다음부터 스드메니, 예단예물이니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잖아”
“그렇지, 어휴.. 다신 못할 것 같아. 이미 결혼해서 다행이다”
주거니 받거니 얘기하다 보니 어느덧 우리의 주말저녁이 끝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