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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발까마귀 Apr 30. 2023

동네 탁구장에서 요가

쪽팔림, 그 너머에 

타국에서 사는 것은 외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인터넷에서 각종 모임을 찾아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쉬는 날 요가 수업이 있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안 그래도 몸이 좀 뻐근하고 유연하지 않아서 한번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신청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장소를 검색하니 00 탁구장이었는데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요가 스튜디오도 아니고 탁구장…?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간판도 탁구장이고 요가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건물이었습니다. 그래도 탁구장에 스튜디오가 있나 보다 하고 건물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퐁퐁퐁 하며 탁구공이 튀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열심히 탁구를 치고 있었습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이거 뭐지. 


정말 그냥 탁구장이었습니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 아닌가 생각해서 핸드폰을 꺼내 주소를 봤는데 분명히 여기가 맞았습니다. 신청자 수가 없어서 그냥 안 하는 건가? 아니면 애초에 요가 수업 따위는 없었고 그냥 내가 낚인 건가? 그냥 나갈까? 하는 잡다한 생각들이 올라왔고 저는 그냥 나가자는 결정을 내리던 그때, 한 아저씨가 저에게 다가와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기 혹시 여기 오늘 요가 수업이…?” 


그 아저씨도 순간 탁구장에서 왜 요가를 찾냐 하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도 무안해져서 뒤를 돌렸는데 반대편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더니 요가하러 왔냐고 물어봤고 저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바로 요가선생님이었습니다. 그분은 이 탁구클럽 관계자인 듯 보였고 오늘 참가자가 별로 없어서 그냥 열심히 탁구를 하다가 저를 발견한듯했습니다. 그분이 저를 탁구장 구석으로 데려갔고 거기서 매트를 깔고 앉으라고 했습니다.


약간 신경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탁구장 구석에 저랑 선생님 둘이서 요가메트를 깔고 앉아 있고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바로 사람들이 탁구를 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불편함을 가지고 스트레칭을 하였고, 잠시 후 선생님은 저를 바라보면서 이제부터 웃음명상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뭔가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부터 30초 동안 미친 듯이 웃는 것이 웃음명상이라는 것입니다… 하… 


저는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아까 들어오기 전 기회가 있었을 때 나갔어야 됐는데 이미 시간은 늦었습니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고 긴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탁구 치는 탁구장 한구석에서 매트 깔고 앉아 갑자기 30초 동안 미친 듯이 웃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한 번 눈감고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이 느끼는 그 기분을 저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갑자기 선생님은 진짜 미친년처럼 웃기 시작했고, 저도 어쩔 수 없이 따라서 소심하게 하~ 하~ 하~ 웃기 시작했습니다. 30초라는 시간은 어떨 때는 빛의 속도로 지나가 버리지만 꼭 이럴 때는 매우 느리게 지나갑니다. 그런데 계속 웃으면서 한 가지 느껴진 것은 이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웃음소리는 조금씩 커져 갔고 30초는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묘한 카타르시스가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슬쩍 주위를 둘러봤는데, 신기했던 것은 사람들은 그냥 계속해서 탁구를 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웃음명상을 하기 전 저는 잔뜩 긴장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탁구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저를 미친놈으로 볼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내지르고 나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제가 생각했던 만큼 저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열심히 탁구를 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칠 수 있다면 어떠한 것도 명상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말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여태까지 명상이란 방석에 눈 감고 앉아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일상에서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명상이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물론, 이 웃음명상을 두 번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은 크게 없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신경 쓰면서 보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집을 사려고 하고 좋은 직장을 가려고 하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비싼 옷을 입고 화장을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습니다. 저도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타인을 의식합니다. “저 사람 혹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혹시 나를 비웃지 않을까? 혹시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등등등 


하지만 우리의 걱정과 불안해 비해 실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제가 겪었던 체험 때도 그랬고 일상에서 우리가 겪는 쪽팔림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우리 스스로가 과대해석하는 게 더 큰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자의식이 조금이라도 줄어든다면, 그럴 수 있다면 우린 조금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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