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유학을 떠나다
나는 한창 유학 붐이 일었던 때 유학을 떠난 사람들 중 하나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에 지금도 감사하다.
사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때 유학을 간 건 도피성이 다분했다. 중학생 때, 나는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다. 성적은 중상위권이었고, 영어를 꽤 좋아했었기에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본 토플시험을 망쳤고, 큰 실망감이 들었다. 스스로, 내가 관심 있는 분야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이래서 스스로 부끄러움과 동시에 앞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피 터지게 공부해야 한다는 암담함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는 솔직히 그것을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교환학생이나 일 년 갔다 오는 건 어떠냐고 물었는데, 순간 탈출구를 보았다. 유학을 가면 한국에서 처럼 치열하게 안 살아도 되고, 덤으로 영어도 배울 수 있고 외국 친구도 사귈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이 되었다.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나는 바로 간다고 했고 얼마 있다 나는 바로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지나고 지나, 여러 나라를 돌아 나는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왔다.
부메랑처럼 밖으로 돌아 집에 다시 도착한 기분은 시원섭섭하다. 나이는 들었고 삶의 무게는 무거워졌다. 가진건 별로 없고 열심히 살고 싶은 욕망도 없다. 도망치듯 떠나 밖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상황들에 직면하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 속에서 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나는 언제나 도피와 대면의 선택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도망치고 도망치면서 돌고 돌다 보니 삶은 대면하지 않는 순간 가치를 잃어버리고 인간 존재로서 나아갈 수 있는 이상향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