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작가다.

모든 영상물이 인생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by 영화하는 이모씨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정말 쉬지 않고 영상을 본다.

여가 시간을 텔레비전 앞에서 보낸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는 버스를 기다리는 몇 분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잠깐에도 예외가 없다.

이렇게 종일 보는데도 한 가족들이 서로 본 것이 같을 수 없을 만큼 영상물의 수 또한 정말 무궁무진하다.

이 말은 영상물은 이제 더 이상 ‘작가예술'의 영역의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고 다르게는 그만큼 다양한 영상에 노출된 관객들의 니즈는 훨씬 더 즉각적이며 동시에 눈높이 또한 높아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매일 이렇게 많은 영상을 보는데 오늘 본 것들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막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개중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들이야 하루이틀 기억이 날 수 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영화는 평생 기억이 나고 애정하는 드라마는 한 번만 봐도 대사가 머릿속에 박혀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혹자들은 재미있었던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재미없는 이야기도 기억할 만큼 우리는 한가하지 않다.

그런데 그들이 재미라고 말하는 그것! 은 단순히 말초신경을 자극받은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뇌는 생각보다 아주 똑똑해서 가벼운 즐거움을 재미로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재미라고 느끼는 것은 좀 더 심오한 차원의 것이다.

그럼 그 심오한 차원의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존재할까?


바로 ‘질문’이다.


제목 없음.png 좋은 질문은 흥미롭다.

사실 우리는 작가가 되기 이전부터 수많은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하면 라면을 더 맛있게 끓일 수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도덕적인 선택은 우멋인가?'까지 그 질문의 영역은 한정이 없다.

매 순간 어떻게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과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찾아간다. 여기까지는 범인凡人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응당 작가라면 거기서 딱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 한다. 그 질문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질문들은 평범해서 쉽게 공감되기도 하고 신박해서 흥미롭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어떤 질문이든 좋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서 하는 가장 흔한 실수가 마치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듯 스토리에 어떤 스킬을 ‘공부’하려고 한다. 물론 작법에 스킬이 전혀 배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기술은 훈련하면 되는 것이기도 하고 훈련된 작가들을 고용하면 해결되기도 한다.

진짜 작가를 작가로 만들어 주는 것은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경험하는 그것을 세상에 꺼내놓을 때 가능하다.

그것은 가르칠 수도 없고 훈련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질문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