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답을 몰라도 영화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오역하는 작가들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답을 알려는 노력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다) 이런 경우 스토리가 잘 흘러가다가 결말 쯤 가면 길을 잃는 경우가 있다.
사실 길을 잃은 것은 선하다.
갈 길은 정했었는데, 짬이 부족해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애틋하기라도 하다.
그런데 질문을 던져놓고 '열린 결말'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 뒤에 숨어 '없는 결말'로 끝맺는 작가들이 있다.
이것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물러서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라고 나자빠지는 꼴이다.
혹자들은 열린 결말이 상당히 쉬운 선택이라고 여길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니고 뭐 하나 정확히 끝맺기보다는 관객들의 선택에 맡긴다니 이런 이야기들은 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본 스토리는 대부분 '열린 결말'이 아니라 '없는 결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결말이 열리려면 사실은 그 안에 A와 B가 선명하게 있어야 한다.
A일수도 있고 B일수도 있으며 동시에 작가가 제시하지 못한 C~Z까지의 그 무엇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진짜 열린 결말이다.
이런 스토리를 설계하려면 일단 작가는 완벽하게 A가 되는 결말과 완벽하게 B가 되는 결말이 모두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어느 쪽으로 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균형을 유지해 가며 결말로 서서히 다가갈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두 가지 스토리를 만드는 공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열린 결말을 잘못 이해한 작가들은 질문을 던져놓고 수습하지 않는다.
영화제에 가서 GV에 앉아있다 보면 관객들의 질문에 '열린 결말'이라고 대답하는 감독들이 왕왕 있는데 대부분이 그렇다.
정말 제대로 열린 결말의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관객들은 감독에게 결말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이미 감독이 열어놓은 갈림길 위에 서서 각자의 결말을 향해 걸었기 때문에 그 어떤 영화보다도 깔끔한 결말의 영화를 이미 봤다.
그러니 굳이 감독의 입으로 설명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
나는 여기에 쓰는 이 글들을 통해 처음 스토리를 구상하는 단계부터 완성해서 마무리하고 다음 작품의 시작점에 다시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짚어 갈 생각이다. 그러니 벌써 결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목차에 어긋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작가는 지금 손에 쥔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애써 몸부림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고통스럽고 고통스럽게 스스로를 몰아세우다 찾게 된 그 답을 감히 관객들에게 조심스럽게 내어놓는 것이 작가의 본질이다.
그런데 어떤 작가들은 허세 좋게 그럴듯한 질문을 던져놓고 고뇌하는 대신 다리를 꼬고 앉는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2023년의 철학자의 모양인 듯 답은 관객들에게 양보하겠다고 여유롭게 웃어 보인다. 그것은 작가가 아니고 허풍쟁이고 사기꾼이다.
작가는 참으로 후진 직업이다.
맨날 질문을 찾아 헤맨다. 세상 행복하고 세상 긍정적인 사람이고 싶지만 작가라는 정체성 앞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삐딱하게 봐야 한다. 다들 좋다고 하는 거기서 진짜 좋은지 되물어야 하고 시비를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의 답이 뭔지 찾아 헤맨다. 아무도 궁금해하지도 않고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는 그 질문의 답을 혼자 그렇게 애써 찾아 헤맨다.
그러다 그렇게 집필을 시작하면 좀 나아지나? 만만의 콩떡이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그 글을 혼자서 써 내려가야 하며 언제가 완성인지 모르는 그 글의 끝을 향해 간다. 그것도 부족해 내 글을 기다리지도 않았는 사람들에게 불쑥불쑥 들이 민다.
한 번의 승낙을 위해 수많은 비난과 영혼 없는 죄송하다는 인사를 기꺼이 받아야 한다.
아이고 진짜 환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