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모를 수도 있고 숨길 수 도 있다.
궁금해한다고 해서 누구나 답을 깨우치는 것은 아니다.
답을 깨우치지 못한다고 해서 궁금해할 자격이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서 아. 직. 은 답이 없을 수도 있다.
어딘가는 있겠지만 나와 평생 조우하란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답이 없으면 작가를 위한 질문이 될 수 없을까?
당연히 없고 당연히 있다.
누군가는 동의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애써 구분을 해보자면... 쩝쩝
상업영화는 반드시 답이 있어야 하고 다양성 영화(예술영화, 독립영화라고 부르는 그 어디쯤의 작품들)에서는 반드시 답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리즈 물은 반드시 답이 있어야 하고 단막은 반드시 답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업영화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개봉하는 일반 영화 또는 ott 오리지널제작영화등이다.
다양성 영화는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개봉하거나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는 작품들로 예술영화, 독립영화라고 하는 영화를 말한다.
시리즈물은 우리가 흔히 아는 00부작 드라마 등이 있다.
단막은 시리즈에 비하면 물리적으로 짧은 영상물로 이 안에 다양성영화도 들어가고 단편영화로 포함되어 있다.
상업영화나 시리즈물이 답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다.
상업적 성취가 목적인 만큼 더 많은 사람의 동의와 공감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궁극의 목적은 관객몰이란 말이다.
이런 작품을 소비하는 관객들의 목적은 예술적 경험을 위함이 아니다. 어떤 가르침을 받고 싶은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유희이고 오락이다. 그러니 물어봤으면 답이 뭔지까지 시원하게 한방에 해결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 답은 아주 유별나서는 안된다. 적당히 보편적이고 적당히 평범해야 한다.
이런 작품을 소비하는 이유가 작가가 던진 질문의 답을 알고 싶어서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로맨틱코미디를 볼 때 혐관이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그 뻔하디 뻔한 결말을 몰라서 보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런 경우 어떤 결말이 나올지 전혀 상상도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착한 사람이 이길 줄 뻔히 알았고(예:어벤저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무한한 희생을 선택할 줄 뻔히 알며 (예:부산행) 나쁜 놈은 처단될 것을 뻔히 알면서(예:범죄도시) 극장에 간다.
이것은 영화의 결말이 아니라 과정을 즐기고 있다는 확실한 반증이다.
그래서 이런 영화들은 시나리오가 살벌하게 잘 써지지 않았어도 여러 가지 보완이 가능하다.
화려한 액션으로 채워져있어도 좋고 배우들의 요사스러운 연기를 보는 맛을 줘도 좋다.
그렇지만 다양성 영화나 단편영화는 좀 다르다.
먼저 이런 작품을 소비하는 관객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이 영화를 즐기는 것은 단순히 쾌락적 즐거움을 목적에 두지 않는다.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경험을 위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해석하고 작가의 의도를 찾아가는 것을 즐긴다. 그러다 보니 설명적이거나 지나치게 친절한 화법에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이런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받은 질문의 답을 스스로 찾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이런 작품의 작가들은 답을 제시하더라도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의 시청과정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니 작가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져 놓고 뒤로 빠진다.
그러면 관객들은 질문에 답을 찾으며 그 영화를 즐긴다.
이런 분류의 영화들은 답이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다.
부모가 무조건적인 희생을 하지 않아도 좋고 (예: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주인공이 결국 꿈을 찾아가는데 멈칫(예:레이디버그) 해도 된다.
보편적이지 않으니 아무래도 불편할 수 있고 그래서 쉽게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자연히 관객들이 덜 들꺼라는 것이 유추가능하고 그래서 애시당초 독립영화의 플랫폼으로 제작되는 것이다. 돈을 벌어 제작비를 회수해야할 의무에서 자유롭거나(제작지원금등으로 찍을때) 그 의무를 줄이기(자기돈이나 소형투자사의 작품일때)위해서다.
그러나 불호가 있는 영화에는 확실한 호가 있는 법.
이런 영화들이 매니악한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 어떠한 경우이든지 스토리는 작가 그 개인이라는 특수한 체에 걸러져 나와야 한다.
그래야 아무리 뻔한 이야기도 특별해질 수 있다.
반대로 유난스러운 이야기도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진짜 삶, 자신의 진짜 경험들은 절묘한 대사들을 낳고 익숙한 것 같지만 절절한 씬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학생 중에 말 그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학생이 있다.
대치동키드로 자라 강남 8 학군의 자사고를 졸업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어떤 경험에 대해 물을 때마다 항상 "예를 들면... "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라치면 그 학생보다 내가 10배는 더 잘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학생에게 경험을 묻는 것은 그 학생만의 고유한 경험이 궁금해서 이다.
그 학생의 것, 그 학생만 아는 것, 그걸 알고 싶고 그걸 영화로 보고 싶다. 그런데 그 학생에게 내가 "예를 들지 말고 자기 이야기를 하세요."라고 하는 말은 거의 "팩트리 피쿠스 토탈루스(해리포터의 나오는 동작정지주문)"와 동급이 된다.
마법이라도 걸리는 듯 순간 입이 얼어붙는다. 예외가 없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러면 어렵다. 작가 해 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