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구조라는 블랙홀에서 살아남으려면

애초에 구조 근처에도 가지 않으면 된다.

by 영화하는 이모씨

질문이 있다. 그리고 나름의 답을 찾았다.

이제 관객들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필요하다.

나의 질문을 실어다 나를 그 사람말이다.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생쥐도 가능하고 로봇도, 외계인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상하고도 명백한 사실이 있는데 제 아무리 작가가 상상력 대마왕이라고 해도 책상이나 의자, 책, 텔레비전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없다. 물론 스펀지도 주인공이 되는 마당에 뭔 소리인가 싶지만 사실 스펀지 밥도 사람이다. 스펀지라는 창조적 인종일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주인공은 반드시 생각하는 존재, 사피엔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의 중요한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주인공은 반드시 욕망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주인공은 그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일반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이진 상태를 말하나

지금보다 더 후지게 성장하는 역성장, 곧 퇴행도 포함하고

무성장(사실 이것도 엄연히 성장이다.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날뛰는 과정에서 깨닫고 느낀 모든 것들을 거스르고 성장하지 않기로 버티기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도 포함된다.


이것은 곧 스토리의 조건과도 부합하는 말이다.

스토리란 한 인물이 자신의 욕망을 품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며 성장하는 여정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욕망은 작가가 품은 질문과 직결된다

성장은 결과로써 작가가 찾은 답에 가깝다.


나는 앞으로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할 생각이다.

좀 멋진 이유를 들자면 '스토리가 곧 주인공이니 당연하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제 막 시작하는 작가들이 '구조'라는 블랙홀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작법 책 몇 권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구조, 플롯 이런 말들을 들어 봤을 것이다.

아예 3막 구조에 대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플롯에 대해서만 다루는 책이 있을 정도니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어림이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무슨 수학공식이나 화학식을 외우듯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고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런 책에서 다루는 영화를 따라가 보면서 얼추 이해가 되었다 싶지만 다른 영화에 대입해 볼라치면 완전히 다른 소리를 하는 것 같아 멘붕에 빠지기 일쑤다.

근데 이건 영화니까 당연한 것이다. 원래 영화라는 것이 똑같을 수 없는 종자인데 그것을 일정한 규칙으로 이해하려고 접근하는 것 부터 좀 이상한 일이다. 원래부터 형태가 없는 슬라임덩이리를 두고 이것이 세모인지, 네모인지 진지한 토론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구조를 '공부'하려고 하면 할수록 작가로서의 자존감은 쪼그라든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려워지니 결국은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말 그대로 공식을 모르니 문제를 손도 못 대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쓴 것이 없고 그러면 작가가 아니니.... 결국 구조를 이해하겠다는 치기는 작가 되기에 가장 큰 천적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구조를 완전히 무용한 것이라 말하는 것 같다. 역시 졸열한 필력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사실 스토리는 굉장히 구조적인 것이며 수학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내가 글을 써보면서 내가 만난 주인공의 이야기를 기록하다 보니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은 버려야 하는지, 어떤 것에 집중하고 어떤 것에는 힘을 빼야 하는지 고민하다 보니 이것이 상당히 구조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을 다뤄보지 않은 작가가 구조 먼저 생각하며 일정한 울타리를 먼저 치고 그 안에서 필요한 만큼만 주인공에 대해 고민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참으로 날로 먹겠다는 심산이다.

언뜻 보면 경제적이고 굉장히 빠르고 바른 방법 같지만 주인공을 다뤄보지 않는 작가가 공부로 구조를 배운다? 어불성설이다.


우리 딸들은 집에 오면 경쟁적으로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남편도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열심히 들려준다. 그런데 그때 보면 나의 미세한 반응에 따라 어떤 부분은 넘어가기도 하는데 내가 웃거나 성을 내며 동요라도 하면 어떤 부분은 재탕, 삼탕을 한다.

듣는 나의 반응을 보며 이야기를 구조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스토리'도 똑같다.

다뤄봐야 한다. 뱉어내서 반응을 봐야 한다. 일단 적어보면 다른 사람이 볼 것도 없이 내가 먼저 안다.

걷어 내야 할 부분들, 불필요한 부분들, 자세히 보여주고 싶은 부분들, 힘을 줘야 하는 하는 부분들. 이런 것들이 감각적으로 알아진다.

왜? 우리가 원래 타고난 작가라서?

아니, 우리는 엄청난 레퍼런스를 봐왔고 말하고 있으며 듣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구조고 나발이고 세상에 있지도 않은 듯 모른 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오직 주인공에게만 집중할 때다. 그래야 쓰기가 시작될 수 있다.


11.jpg 구조라는 틀을 마트에서 살수 있다면 좋겠다.


이전 04화1-3. 열린 결말과 없는 결말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