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모두가 주인공이다? 만만의 콩떡이다.
주인공의 조건 첫 번째!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저 주인공.
정말 내가 제대로 만난 걸까? 아니면 내가 오리고 붙여 어거지로 만들어 놓고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우리 앞에 선 그 주인공이 진짜가 아닐 수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내 앞에 나타난 저 주인공의 실체를 알고 싶다면 주인공의 충분조건을 알아야 한다.
주인공에 조건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봤던 주인공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말인데....
잘생긴 거? 아님 실장님? 츤데레? 캔디?
이 모든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주인공은 욕망이 있어야 한다.
이게 욕심꾸러기라는 말과는 완전히 다르다.
원래부터 이것저것 다 가지고 싶어 하고 탐이 많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되러 주인공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그의 길고 지난한 인생에서 카메라가 딱 들이민 지금! 딱! 생기기 시작한 욕망이 눈에 띄려면 반대로 그동안 무욕의 상태일 때 더욱 눈에 띄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주인공은 애초에는 상당히 무력해야 한다고 이해하면 안 된다.
사람은 다양하니 어떤 상태이든 상관은 없다.
다만 초보작가에게 무욕의 상태의 주인공이 좋은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런 주인공은 지금 떠오른 그 욕망, 오직 그것에만 온 신경과 행동을 몰아붙일 테니 훨씬 집중력 있게 그려내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다시 핵심으로 돌아오면 '주인공은 욕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욕망이 생겼을 때 바로 그때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때라는 말이다.
그래서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정확히 말해 주인공 후보라는 말이다.
여기서 욕망을 품는 순간! 스테이지에 올라설 자격이 부여된다.
욕망이라~
욕망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여럿일 게다.
하지만 작가입장에서 보면 모든 욕망을 무조건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1) 보편적인 것
이 말은 평범한 것과는 다르다.
'먹고 싶다', '자고 싶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싶다'. 이런 것들은 평범하다.
그런데 '귀한 저 음식을 먹고 싶다', '저 사람이랑 자고 싶다', '저 자리를 꿰차고 앉고 싶다'는 보편적이다.
평범한 것은 본능적으로 필요해서 욕망하는, 정말 누구나~ 누~구~나 가지는 욕망이다. 이거 안 하면 죽는다에 가깝다. 주인공에게 필요한 욕망은 사피엔스로서의 욕망이다.
생각하는 존재 이기에 가질 수 있는, 이거 없다고 실제로 죽지는 않지만 이거 없으면 실존적으로 죽을 것처럼 느껴져 애절하게 욕망하는 것 말이다.
저 귀한 음식을 먹고야 말겠어! 이런 욕망은 1차적으로만 보면 모든 관객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음식을 먹고야 말겠다는 주인공의 욕망에는 영생을 하고 싶다거나 인생의 한 번쯤은 귀한 대접을 받고 싶다는 훨씬 더 근본적인 주인공의 욕망에 동의하게 된다. 그러면서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저 사람이란 자고 싶어!라는 욕망은 설정된 관계(불륜일 수도 있고 동성일 수도 있고 엄청난 세대의 차이일수도 있는)에는 동의할 수 없을 수 있으나 완전하고 충만한 사랑을 바라는 주인공의 더 깊이 숨은 욕망에는 누구나 공감하게 된다.
그러니 주인공의 욕망은 평범하지 않은 보편성을 품어야 한다.
2) 후진 것
사실 주인공들의 욕망 그 자체는 얄팍하다. 생각보다 그리 멋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내 가족을 지키겠어! 이런 것들은 선한 것이지만 생각보다 치졸하다.
자기가 자기 가족을 지키겠다니, 냉정하게 보면 다른 사람의 응원을 받을 일이 아니다.
나라는 구하겠다! 악당을 일망타진하겠다! 정도는 되어야 관객들의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후진 욕망은 관객들에게 환영받는다. 왜냐하면 뭐 그리 대단히 자랑할만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평소 쉽게 드러내지 않는 아니, 못하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 내가 우리 딸을 구할 거야!"
이건 사실 그리 자랑할만한 것, 칭찬받을만한 것이 아니다.
작가들은 이 자체로 응원받을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이가 안 좋은 부녀사이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싸울 수 없는 환경에서도 싸우기를 주저 않는 아빠라는 설정들을 밀어 넣는 것이다.
3) 솔직한 것
복수하고 싶다. 죽이고 싶다. 니가 쫄딱 망했으면 좋겠다.
이런 욕망들은 우리가 평소에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을 우리를 대신해서 솔직하다.
그것만으로도 주인공은 완전히 나의 우상이 된다. 그다음에는 관객들이 알아서 자신과 주인공과 일치시킨다.
주인공은 우리랑 비슷하지만 다르다.
이 말은 정말 어렵다.
우리 남편은 스스로에게 돈과 시간을 쓰는 것에 인색하다.
나와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스스로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가끔 골프 약속이 연달아 생기면 옆에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혼자서 불편해한다.
놀고 싶고 그래서 놀고 있을 때 스스로를 나쁜 사람인가 의심한다.
하지만 사실 놀고싶고 더 좋은 골프채를 갖고 싶은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을 억누르고 살아온 부모님들을 옆에서 보면서 그게 옳다고 학습된 것 뿐이다.
그런데 그 분들은 그게 옳다고 믿어야 건강하다.
그게 바보같은 거라고 하는 순간 그 분들의 생이 한심해질테니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분들의 그 희생(사실은 욕구를 억누른 학대에 가까울지 모르겠다)이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을 준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다를수 있다. 그분들이 그 욕구를 지혜롭게 해소했다면 되러 가정에 더 충실했을수도 있고 스트레스가 줄어 가족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건냈을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주인공은 뭔가 대단한걸 해내야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욕망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좀 후진, 그렇지만 솔직히 내가 원하는 그것을 당당히 말하는 건강함이 비로소 우리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