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st). 약한 것에 약하다.

주인공의 조건 네 번째!

by 영화하는 이모씨

주인공은 하마르티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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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르티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을 통해 주인공의 조건으로 언급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주인공은 하마르티아를 가지고 있으며 결국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이것이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이디푸스>로 이것을 잘 설명했는데(이것에 관련해서는 많은 글들이 있으니 추가로 더 알고 싶다면 참고하길 바란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와 동침할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버려지지만 결국 그대로 되었고 그 굴레에서 어떻게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파멸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은 선상으로 영화 <올드보이>가 자주 언급된다.

오이디푸스와 이름도 비슷한 주인공 오대수는 결국 혀를 잘 못 놀려 15년간 감금된다.

허나 그 이유를 모르는 오대수는 여전히 혀를 잘 못 놀려 딸과의 동침이라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게 되고 스스로 혀를 자르는데 이른다.

하마르티아는 이런 것이다. 주인공을 파멸로 이끄는 것,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것.


그런데 요즘 학생들에게 하마르티아를 이야기하면 잘 알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학>을 읽기 않기 때문이다.

또 선생님들도 가르치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선생님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걸 학문적으로 파고 공부하는 분들은 다른 말씀을 하실 수 있으나 실제로 스토리를 작업하는 작가입장에서 보면 하마르티아는 다른 이해가 필요한데 그걸 선생님들은 소화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서 다다른 것들을 결과만 가르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쉽고 빠르게 가길 바라는 애정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그런데 그런 선생님들보다는 덜 친절한 나는 하마르티아를 이해하기 위한 복잡한 과정을 외로이 가지 않을 란다. 굳이 초보작가의 손을 끌어다 앉히겠다.


1. 하마르티아의 핵심은 '선천적' 결함이라는 데에 있다.

이걸 작가들은 트라우마와 혼돈한다. 트라우마는 어떠한 강력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생긴 내상을 말한다.

이것은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나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주인공의 성장을 가시화하기 위해서 트라우마를 흔히 사용한다.

'원래는 000 하지 못했던 주인공이 어떠한 계기를 통해 000을 하게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극복하기도 하고

예전에 경험한 것과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하며 극복하기도 한다.

혹은 자신과 똑같은 선택을 하는 다른 사람을 보며 각성하며 극복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하마르티아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하마르티아는 '선천적'인 것이다.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이다.

팔을 하나만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어떠한 경험을 통한다고 해서 팔이 두 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어떤 에피소드를 경험한다고 해서 극복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한 학생이 고백했다.

사고로 딸을 읽은 엄마가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단편으로 만들었단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쓸 때, 촬영을 할 때는 몰랐는데 편집을 할 때 보니 사고로 딸을 잃은 엄마가 그것을 극복을 한다는 게 애초부터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생겼다더라.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영화로 찍었다는 생각에 그 영화를 완성하기 힘들었다고.


사실 맞는 말이다.

이것은 애초부터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고로 딸을 잃은 것은 트라우마가 아니라 하마르티아이기 때문이다.

하마르티아는 애초부터 극복이 안 되는 것이니 이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것이다.

선척적인 거라며?

엄마가 딸을 사고로 잃은 것은 이미 후천적으로 일어난 사고인데 이게 어떻게 하마르티아인가?


여기서 바로 글자가 아니라 글을 해석해야 한다.

자. 생각해 보자.

엄마가 사고로 딸을 잃었다.

이제 엄마는 죽었다. 없는 것이다.

엄마는 죽고 사고로 딸을 잃은 사실을 품은 여자가 남아 있다.

이 여자는 딸을 잃기 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다. 완전히 새로 태어난 것이다.

딸을 잃었다는 엄청난 상처를 가슴에 '선천적'으로 묻은 채 말이다.


이런 선천적 결함은 주인공을 약하게 만든다.

이런 주인공은 관객들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때문에 관객들은 알아서 주인공 곁으로 한 발자국 바짝 다가간다.

도닥여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주인공을 애정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약점에 내가 걸려 넘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면 답답하고 안쓰럽다. 그 심정을 너무 잘 안다.

그러니 주인공이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주인공과 관객은 깊은 내적 친밀감으로 똘똘 뭉쳐지는 것이다.


이해가 되었을까?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마르티아는 두번째 중요한 지점이 하나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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