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nd). 뻔하게도, 가장 나쁜 놈은 여기에.
주인공의 조건 네 번째에 이어.
하마르티아에는 중요한 지점이 또 하나 있다.
<시학>에서 주인공에게 하마르티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두 번째 핵심은 그것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르게 하는 요소라는 점이다.
이 파멸은 극단적인 어떤 결말일 수도 있으나 비극적 상황일 수도 있다.
모든 스토리의 주인공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한다.
그런데 그 모든 선택과 결정, 행동은 지극히 주인공답다.
그 사람이기에 할 수 있고, 할 수밖에 없는 선택들을 하며 나아간다.
날을 바짝 세우고 생각해 보자.
위험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는 스토리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이런 스토리들은 99.999999% 확률로 미션에 성공한다.
그런데 이 모두가 다 아는 서사의 스토리 중에서도
가끔 어떤 작품은 장르적으로 흘러간다고 느낀다.
이런 스토리는 뻔하다거나, 클리쉐가 범벅되었다고들 한다.
가끔 어떤 작품은 절묘하다고 느낀다.
이런 스토리는 안정적이거나, 클래식하다고들 한다.
두 가지의 차이점이 뭘까?
나는 주인공의 선택이냐, 상황의 어쩔 수 없음이냐의 차이라고 본다.
사실 서사는 비슷하다.
1.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과 있다(둘은 아주 잘 지내는 상태-결혼임박이나 출산임박등-이거나 아주 못 지내는 생태-이혼으로 대화부족, 사춘기자녀와의 갈등등-이다.)
2. 주인공은 어떠한 사건에 휘말리며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다
3.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기 위해 출동한다.
4. 주인공은 거의 구할뻔한 상황까지 가지만 안타깝게 실패한다.
5. 주인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기 위해 다시 출동한다.
6. 주인공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강력한 방해를 받는다.
7. 주인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는 것을 성공한다.
일반적인 서사를 정리한 것이다.
어떤 주인공을 만나 어떤 묘사에 버무리느냐의 따라 수천, 수만의 스토리로 재탄생할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를 하나 들어보자.
5. 주인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기 위해 다시 출동한다.
라고 했을 때
경우 1)
주인공이 앞서 반격을 당하며 총에 맞았다.
동물병원에 잠입해 스스로 탄알을 빼내고
주인공은 다시 일어나 그들과 맞서 싸운다.
경우 2)
주인공이 앞서 반격을 당하며 총에 맞았다.
기절한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성의 집 침대 위다.
이미 그녀가 총을 맞은 곳을 수술해 놨다.
주인공은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자신의 사연을 풀어낸다.
그녀는 그를 위로한다.
그때 다시 적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주인공은 다시 일어나 그들과 맞서 싸운다.
둘 중에 어떤 이야기가 더 매력적일까?
다음 줄 어디 안 간다. 잠깐만 생각해 보자!
전체 스토리가 없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완전하긴 힘들지만
둘을 절대 비교하자면 경우 1이 훨씬 매력적인 스토리일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우 1은 주인공이 자신의 기질과 성격에 준해서 자신의 결정대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경우 2는 주인공을 스스로의 기질과 성격이 아니라 그저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에 반응한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보여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초보작가들은 이것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경우 2가 단순하게 더 드라마틱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반응만 하는 주인공은
결국 원래 이런 스토리는 이렇게 흘러가기로 정해놓기라도 한 듯한 길로만 간다.
작가는 정보력 빠방한 헬리콥터 맘이 되어 주인공을 무기력한 자녀로 만드는 것이다.
경우 1에서 보여주고 있는 주인공의 기질과 성격이 바로 하마르티아다.
이 주인공의 하마르티아는 고집이 세고 독단적이라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기질이 이 씬에서는 스스로 구하지만
아마도 그 독단적인 기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애초부터 틀어졌을 수도 있으며
동시에 욕구(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겠다)가 실현될 수 있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일을 그르칠 수 있다.
하마르티아는 주인공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괴롭힐지 모르는 요소로 어떻게 해도 없어지지 않고 존재한다.
주인공이 죽지 않으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하마르티아를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인공의 소멸이며 곧 스토리의 증발이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기질, 성격, 그중에서도 썩 좋지 않아 선척적 결함이라고 부르는 하마르티아는 허구의 스토리 속 주인공뿐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주인공이 가져야 할 조건으로 명명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이야 말로 누구나,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고 싶은 것이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반복될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마치 악운의 사돈의 팔촌 악운까지 나만 쫓아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것은 나의 하마르티아 때문일수 있다.
나의 기질, 성격이 결국 오늘 나의 상황으로 나를 데려다 놓은 것이다.
이 말은 나처럼 살았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되었다는 말이다.
나처럼 살아서는 남처럼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남처럼 살고 싶다면 남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어제처럼 살면 내일도 어제와 같다는 말이다.
달라지고 싶은 나는 어제 내가 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하마르티아를 소멸할 수 없으나 피해 갈 수 있다.
하마르티아를 정확히 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