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를 보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때가 있다.
왜 하필 주인공에게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질까?
왜 주인공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한마디를 해서 분란을 만들까?
이럴 때 독자나 관객들은 너무 작위적이야~ 하고 넘어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것은 작가가 주인공에게 해주는 일종의 대접이다.
잘 차려진 15첩 반상이라는 말이다.
이런 장면은 작가가 주인공에게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깐 딴소리인데
코로나 직전, 두 아이와 난 독일을 한달간 여행했다.
독일은 기차표를 구입하면 그 안에 지하철 표값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지하철표도 우리나라처럼 기계개표방식이 아니라 양심껏 구입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개인개표원들이 가끔 불시에 나타나 검사를 하는데 아이들과 나는 우리도 한번쯤 검사를 받아보고 싶다고 웃었었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믈 타고 기차로 갈아 타는 순서라 지하철역에 갔는데 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기차시간이 아슬아슬했다. 그래서 기차표를 기차역에서 사기로 마음먹고 그냥 지하철에 올라탔다.
맞다.
무임승차를 한 것이다.
근데 진짜 거짓말처럼 타자마자 검표원을 만났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벌금 안 내고 튀면 공항서 딱 걸린다며 긴 벌금 용지를 출력해줬다. 출국 전에 우리나라로 치면 청량리역쯤 되는 곳에 가서 벌금을 내라고 했다.
위기다.
여행하면서 푼돈도 아끼고 있는데 60유로벌금이라니ㅠ. 여행하며 8만원짜리 식사를 해본 적도 없는데 고스란히 벌금으로 뜯기게 되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나는 7유로만 냈다.
셋이 지하철표만 끊어도 8.3유로였으니 정말 수지맞은 것이다.
아는 독일사람에게 이야기했더니 독일사람들도 이렇게 벌금을 탕감받은걸 들어본 적 없다고 놀라워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나의 영웅담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사실 이걸 한 발자국 물러서 보면 영웅담은 커녕 호구다. 기차표를 먼저 샀다면 안써도 되는 7유로를 지출했으니까.
이 위기가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7유로로, 아니 700유로를 줘도 살 수 없는 것.
1. 개표원에게 딱 걸렸을때 내가 주절대고 있는걸 우리 둘째가 안쓰러워보였다더라. 조용히 와서 내 손을 잡아주었다. 어린 줄만 알았고, 무슨 영화에서나 보는 장면에 들어 와 있는 것 같아 너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순간 난 9살 아이에게 완벽히 의지했다.
2. 그 과정을 지켜보던 두 아이가 엄마랑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3. 독일 사람들에게 한국영화감독아줌마의 스토리텔링이 먹힌다는걸 증명했다.
위기는 이런것이다.ㆍ
'위기는 기회다'
무수히 들어 온 이 말을 나는 진정 의심하지 않는다.
위기가 없으면 우리는 잘난 걸 드러낼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날 벌금이라는 위기가 없었다면 나는 위에 세가지를 얻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고로 주인공에게 위기와 시련은 무조건
먼저 와야한다.
이 절호의 기회를 다른 조연에게 양보해서도 안되고 빼앗겨도 안된다.
지금 위기라고?
기회다.
잘난 걸 알릴 절호의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