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주인공을 공개합니다.

주인공의 조건을 복습하자.

by 영화하는 이모씨

그럼 누가 주인공인가?


이 퀴즈를 풀기 전 몇 가지 단서로 추리가 가능하다.

앞서 살펴본 주인공의 조건을 복습하며 찾아보면

"주인공은 욕망해야 하며 시련을 겪어야 하고 선천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벌써 답이 나왔다.

주인공은 욕망해야 한다.

그럼 누가 주인공일까?


사실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보면 이 스토리는 쉬워진다.

왜냐하면 이 스토리, 이 영화가 다루는 중심사건에서 인호(송강호 분)는 엄밀히 ‘남, 타자他者’이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아내가 타고 있는데 이게 어떻게 남의 이야기냐고 역정을 낼 수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침 그의 아내가 타지 않았다면,

마침 그의 직업이 형사가 아니었다면,

마침 악당의 집이 근무지에서 가깝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는 남의 사건, 남의 슬픔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의 아내가 처음 가는 해외여행으로 그 비행기를 타고,

하필이면 그의 직업이 형사고,

하필이면 악당의 집이 가까워서 이 사건은 그의 사건인 듯 되어버렸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도 이 사건에서 그는 여전히 타자다.


인호는 욕망하는 주체가 아니다.

비행기에서 탈출하고 싶은 아내의 욕망을 공유하는 조연일 뿐이다.


그런데 하필 인호가 송강호다.

칸느가 송강호가 칸느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대표배우이며 세계가 사랑하는 배우 아닌가.

그러니 송강호라는 무계를 덜어내고 스토리에 집중하기 힘들다.

그의 진짜 연기 앞에서 스토리에 대한 판단이 무너지는 것은 우리의 무지함이 아니다.

송강호라는 무게감을 덜어내고 본다는 이 영화는 비행기에 탄 사람들이 내리려는 이야기라는 금세 알 수 있다.


이 스토리가 신파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호는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채혁(이병헌 분)에 비해 과한 행보를 보인다.

그리고 감독은 그에게 너무 과한 시선을 주고 있다.


그 정점에 있는 에피소드가 스스로 약물테스트의 실험체가 되는 장면이다.

사실 이 장면은 정말 너무 감동적이어야 정상인 에피소드이다.

아내를 위해,

아내가 탄 비행기를 착륙시키기 위해

스스로 실험체가 되다니 얼마나 고고한 희생정신이란 말인가?

그런데 작가가 이 영화가 내리려고 하는 이야기인지 내리게 하려고 하는 이야기인지 헤매는 사이에

인호 혼자 바보가 되어 버렸다.

비행기 안에 사람들은 스스로 내리지 않겠다는 인류애 적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인호는 이미 약물을 투약해 피를 쏟고 있는데 말이다.


좁게는 서울, 더 크게는 우리나라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겠다는 비행기 안 사람들의 선택에

마누라 구하겠다고 실험체가 된 그의 희생은 작고 초라해진다.

그는 생사를 오고 가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관객들도 이 영화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헛갈리기 시작한다.

가족에 대한 애끓은 가장의 사랑인지, 극한의 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공동의 인류애인지 말이다.

‘사랑’이라는 카테고리를 키워서 보면 결국 다 들어간다지만 모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정확히 뭘 즐겨야 할지 그것까지 모호해지고 마는 것이다.


아내를 그만큼 사랑한다고 우긴다면야 장사 없지만 그래서 과하고 그래서 신파라는 소리가 따라붙는 것이다.

모든 이유를 사랑이라고 퉁치면 그게 신파가 된다.

사랑인 거 다 아는데 싸랑이야~~~ 하고 밀어붙이면 신파가 된다.

당연히 형사니까,

당연히 가장이니까,

당연히 남편이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그의 걸음걸음이 극 속 인물 ‘인호’가 아니라 대 배우 송강호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조명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아무리 악당의 제보를 받은 담당 경찰서의 형사라고 해도 일개형사가 법무부 장관과 독대를 한다?

이쯤 되면 전도연이 송강호니까 만나줬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적고 보니 이 모든 게 송강호라는 거대한 배우 탓인 거 같지만

이 스토리에서 주인공이 헛갈리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시련을 겪어야 한다는 주인공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서이다.


주인공인 채혁은 비행기 안에 있다.

그렇다면 그의 시련을 무엇인가?

바로 바이러스이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이 맞서 싸우는 실체로서 비주얼라이징하기에 상당히 곤란한 대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게 인물로 전환이 돼야 할 텐데....

이게 바로 빌런이고 이 스토리에서는 테러범 류진석이다.

진석은 바이러스의 원흉이자 실체가 되어 이 스토리에서 가장 큰 악당으로 작용해야 했다.

그런데 너무 빨리 죽는다.

시련의 실체가 너무 빨리, 맥없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니 채혁은 안 그래도 비행기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그 대상마저 금방 죽어버리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주인공으로써 모양이 빠질 수밖에 없는 최상의 조건이다.


이 스토리에서 주인공의 무능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인공은 하마르티아 대신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채혁은 과거 비상상황에서 자신의 오판으로 동료승무원을 잃었다는 자책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사를 들어보면 이것은 트라우마조차도 아니다.


채혁은 스스로 말한다.

"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거야"

그는 자책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스스로의 선택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승무원의 가족인 기장의 용서, 니 잘못이 아니라는 확답이 필요했을 뿐이다.

미안한 마음에 스스로의 선택을 의심하는 것뿐, 그는 자책도 하지 않고 있다.

하마르티아와 트라우마를 헛갈리는 정도가 아니라

이 스토리는 트라우마와 이해받고 싶은 억울함을 헛갈려한다.


정말 대작이다.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되었고 멋진 배우들이 말 그대로 향연을 펼쳐주었다.

비행기 안에서의 위기상황을 재현한 것은 실로 놀랍다.

촬영기 영상이나 인터뷰를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촬영기법이 할리우드 그 어느 것에 비할바가 아니라 그냥 킹왕짱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사랑받지 못했다.

그냥 작은 노트북 앞에서부터 잘못 꿰어진 스토리 때문이다.


작가가 이런 거다.

이 모든 첫 단추를 꿰는 사람이다.

정말 킹왕짱 부담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