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감독도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
주인공은 한 명이다!
주인공은 한 명이다.
이 당연하고 쉬운 말이 이제는 어렵게 느껴진다.
투탑영화도 부족해 멀티 캐스팅 영화까지 넘쳐나는 시대에서 주인공이 한 명이라는 말은 구시대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사실 주인공이 누구냐는 문제는 영화를 보는데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관객들이야 재미있으면 장땡 아닌가.
관객들이 뭘 모른다는 말로 오해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시나리오란 무엇인가>에서 로버트 맥기는 관객들은 극장에 앉는 순간 자기 지능에 25% 정도 상승한다고 했다. 나는 완벽히 동의한다.
이렇게 똑똑해진 관객들에게 의미에 무려 재미까지 챙겨줘야 할 작가가
주인공이 누구인지?
더 정확하게는 주인공이 뭘 하려는 이야기인지
선명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건 기본 값이다.
정말로 정말로 주인공은 한 명이다.
영화를 소개하는 문구들 중에서 우리는 흔히 ‘두 주인공의...’ 또는 ‘ 주인공들의 ’라는 표현을 왕왕 보게 된다. 보통 멜로 영화도 그렇고 케이퍼 무비들, 멀티캐스팅의 영화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건 지극히 완성된 영화를 관객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마케팅적인 표현이지 작가의 그것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주인공이 두 명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쓰는 순간 작가는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혼동하기 쉽다. 주인공이 한 명이어도 쓰다 보면 삼천포로 빠지는 일이 다반사인데 주인공이 두 명이라고?
뒤통수에서 "작가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내가 작가인가?' 헛갈리는 당신이라면 ‘주인공은 한 명이다!’라고 책상에 붙여두어야 한다.
내가 이렇게 까지 주인공이 한 명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듯이
스토리=주인공의 여정
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확실한 스토리는 선명하고 힘 있는 스토리가 된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사실 허상에 가깝다.
사랑. 믿음. 신의와 같은 것들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것들을 관객 앞에 실제 하게 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수단이 바로 인물, 그중에서도 주인공이다.
그러니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다! 이 말은
곧 작가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하다! 와 같은 말이 되고
그것은 관객 스스로 어떤 인물의 에스토크를 받아 이 스토리를 따라가야 하는지 정확히 안다는 것이다.
보통은 영화에서 주인공을 파악하기란 식은 죽 먹기 수준이다.
포스터만 봐도 알 테니 굳이 영화를 볼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당연하고 쉬운 말이 재능 있는 작가들을 통해 어려운 일이 되었다.
재능 있는 작가들은 주인공이 한 명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른 주변인들을 주인공에 버금가는 매력과 비중으로 끌어올려놓았다.
거기에 대형 감독들이 합세하며 멀티캐스팅을 하면서 이제는 포스터만 보고 주인공을 파악하기가 식은 죽을 퍼먹듯 간단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이런 스토리를 소비하는 것은 관객으로써 정말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잘 쌓아지기만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있다.
내가 처음으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 영화가 김성훈 감독의 <터널>이다.
이 영화는 사실 포스터에 이미 하정우 얼굴이 완전 클로즈업으로 박혀있으니
물어볼 것도 없이 하정우가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온 나는 과연 이 영화가
'터널에서 나오려는 사람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터널에서 나오게 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의심했었다.
그 당시에는 이 혼란스러운 질문에
"터널 안에 있는 하정우가
터널밖에 있는 오달수보다 개런티가 비싼 배우이니 터널 안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겠군.
그렇다면 이 영화는 터널에서 나오려는 사람의 이야기야.. 쩝쩝."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이런 질문을 떠올렸다는 것부터 이건 뭔가 쎄하다.
주인공이 확실하면 이런 질문은 필요 없다.
<메버릭>을 보면서 톰 크루즈가 주인공 맞나? 하고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면 <비상선언>은 어떨까?
일단 포스터만 보면 주인공이 누군지 가늠하기 어렵다.
개런티로 따지면야
비행기 안에 있는 이병헌이나 비행기밖에 있는 송강호를 두고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으니
<터널> 때와 같은 알량한 셈법으로는 답을 구할 수 없다.
그럼 누가 주인공인가?
이 스토리는
' 비행기에서 나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인가?
' 비행기에서 내리게 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이것은 비슷한 말 같지만 아주 다른 말이다.
' 비행기에서 나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라면 이것은 '탈출'의 플롯이고
' 비행기에서 내리게 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구출'의 플롯이다.
완전히 다른 판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주인공이 누구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 비행기에서 나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 '탈출' = 이병헌 일 것이고
' 비행기에서 내리게 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 '구출' = 송강호'일 것이다.
과연 누가 주인공일까?
잘 모르겠다고?
감히 말하지만 감독도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
만약 안다면 이렇게 연출해 냈을 리가 없다.
그러니 당신이 모르는 것은 정~ 말~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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