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복수천자

엄마의 말기암 치병 일기

by 단심

자다가 일어난 엄마가 말했다.

“우리 딸이 나한테 인사도 안 하고 가버리는 꿈을 꿨어.” 눈가가 촉촉해진 나의 엄마를 꼭 안아줬다.

“인사는 당연히 하고 가야지. 금방 올게.”


엊그제 밤 9시쯤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숨이 안 쉬어진대.”

엄마는 119를 타고 근처 종합병원에 갔다.

전공의 파업으로 인해 다니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시골의 종합병원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다니던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이런 게 의료 공백인가? 생각하며 종합 병원에서 산소와 진통제를 공급받으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대학병원 외래에 연락하니 담당교수님이 받아주신다고 하셨다.


엄마와 아빠는 당장 대학병원으로 향했고, 나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서울에서 내려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월요일 아침 기차는 전부 매진이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10분째 새로고침을 눌러봐도 나오는 자리가 없다. 기차 앞으로 자리를 옮겨 핸드폰 앱으로 새로고침을 20분째 눌러봐도 나오는 자리가 없다. 한 시간 반이나 남은 다음 기차를 예약하는 수밖에. 야간 근무로 정신이 혼미한 나는, 기차역 아무 곳에서 가방을 베개 삼아 누웠다. 역무원이 “고객님, 어디 아프시거나 하신 건 아니죠?” 물었다. 초췌한 얼굴로 역무원실 앞에서 쓰러져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민망함에 일어났다.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전국에 비가 왔다. 습한 냄새와 옆 사람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섞여서 향이 넘쳤다.


병원에 도착하니 엄마는 이미 복수를 빼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니 엄마가 배도 고프고 물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얼른 편의점에 다녀와 물도 먹이고, 빵도 한 조각 먹였다. 엄마가 이제 울기 시작했다.

‘사람이 이렇게 한순간에 가는구나.’ 생각하면서 무서웠어. 밤 8시부터 숨이 안 쉬어지니까 팔짝팔짝 뛰었는데, 아빠는 자고 오빠는 밖에 있으니까 1시간 동안 울면서 참았어. 9시에 못 참고 오빠한테 전화한 거야. 119 타고 오는 데 너무 덜컹덜컹해서 힘들었어. “


같이 울 뻔했다가, 꾹 참았다. 아빠도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보였다. 아빠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연락을 받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잘못 갔다가, 종합병원으로 다시 와서 엄마를 데리고 대학병원으로 다시 갔다. 오전 내내 운전만 한 셈이다.


복수를 3L 빼고, 알부민 주사를 맞았다. 엄마가 홀쭉해진 배를 만져보라고 했다.

“진작에 뺄걸, 이렇게 간단한 일인 줄 몰랐어. 그동안에는 복수를 뺀다고 하니 너무 무섭기만 했었는데•••“

점심을 먹으러 가서는 엄만 늘 먹는 녹두죽을 시켜놓고 "이렇게 갑자기 많이 먹어도 되나? " 말할 정도로 많이 먹었다. 이뇨제를 처방받고 집에 왔다.


저녁이 되어 엄마는 김치볶음밥을 한 술 떴다. 복수를 빼고 식욕이 다시 늘었다. "이렇게 갑자기 많이 먹으면 안 되는데•••" 하시면서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평소 두 스푼 정도의 먹는 양에 비하면 엄청나다. 그동안 복수가 차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복수는 또 금방 차겠지만, 이렇게 같이 앉아서 밥을 먹고 오래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감사하다.


약속에 다녀온 아빠도 함께 앉아 오래 추억 여행을 했다. 엄마 아빠가 신나서 춤을 추던 영상부터 4년 전 동영상까지 다 함께 보고 웃고 떠들었다. 엄마가 아프고 나서 이렇게 다 같이 앉아서 웃었던 시간이 처음인 것 같다. 오래전 동영상 속의 엄마는 머리카락도 풍성하고, 얼굴에 그을림이 있으며 활짝 웃고 있다. 이제는 그런 모습이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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