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기

암환자의 보호자로 사는 것

by 단심

엄마의 왼손에는 0.5cm 정도의 암덩어리가 있다.

마치 "암덩어리가 너 몸에 있는 게 맞아. " 증명이라도 하듯, 엄마의 눈에 자주 띄는 곳에 나타났다.


단순히 "엄마, 그거 암덩어리 아니고 멍일 거야. "라고만 위로해 주었는데 엄마는 매일같이 “이게 더 커진 것 같아.” 라며 불안해했다.


최근에 엄마의 배를 만져보다 알게 된 사실은, 어느새 복막으로 전이되어 오른쪽 갈비뼈 아래에서 암덩어리가 만져졌다. 꽤나 넓고 딱딱한 고체였다. 엄마는 눌러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이제 손바닥을 보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암덩어리가 느껴질 것이다. 암 덩어리가 커질수록 복수가 늘어나고, 밥 먹는 양이 줄고, 통증이 생기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엄마가 시간의 유한함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본인의 병을 최근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얼른 나아야지.”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갑자기 삶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귀찮다며 회피했던 보험들에 대해

계약자를 자식들 명의로 변경하자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아무리 숫자로 삶을 단정 지어도,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엄마였다.

한참 항암치료와 임상실험을 알아보러

서울에 있는 여러 병원을 드나들 때만 해도,

‘왜 수술이 안되는지, 왜 간이식이 안되는지, 왜 임상실험이 못하는지’ 한참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셨다.

엄마 본인이 완전히 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사실이때로 답답하게 느껴졌다.


항암치료의 효과를 잃어가고 암이 무섭게 커져갈 때부터 의사는 만날 때마다 듣기 싫은 말만 하기 시작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


이때부터는 모두가 가망이 없다고 하더라도

엄마 한 명 만이라도 나에게 평생 살 거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기 전까지 본인의 병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겠다고 말이다.


내 소원이 무색하게도 엄마는 병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얼떨떨하다.


일찍 잔다고 방에 들어왔다. 무너지듯이 눈물이 난다. 첫사랑과의 이별에서 느꼈던 아릿한 가슴 저림보다도 무겁고 깊은 흉통이 느껴진다.

나의 수많은 '처음'을 함께하였으니, 나의 진정한 첫사랑은 사실 엄마였을까.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서 목이 멘다.


오래간만에 집에 온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부탁하고 싶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왜 나는 엄마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을까.

왜 피곤함을 표출해서 미안한 마음을 들게 했을까.

왜 엄마의 조언들을 왜 잔소리라고만 느꼈을까.


엄마는 회사에서도 일, 집안에서도 일만 하는 나에게 “펭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펭귄처럼 총총거리며 일만 한다고. 귀여운 펭귄 인형을 하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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