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의 보호자로 사는 것
상견례 장소가 3일 전 변경되었다.
엄마의 저조한 컨디션을 고려하여, 엄마와 최대한 가까운 장소로 급하게 바꾸었다.
하지만, 엄마는 결국 상견례에 참석하지 못했다.
두 집안은 12첩 밥상을 사이에 두고 엄마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오랫동안 나누었다.
긴장한 탓에 젓가락을 쉽게 들지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음식만 바라보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조차도 먹지 못하면 모형이나 다름없구나.’
라는 사소하고 이상한 잡생각이 삐죽 튀어나왔다.
홍어를 얼른 집어 먹었다.
콧평수가 넓어지면서 정신을 되찾았다.
양가 아버지의 술잔이 오고 가며 분위기가 농익어갔다.
어느새 두 집안은 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렸다.
딸의 시집을 앞둔 아버지의 눈물.
그리고 오늘따라 엄마의 부재가 크게 느껴지는 나의 마음의 눈물.
상견례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나누는 대화가 주를 이루므로, 그 미래에는 엄마가 없는 것이 확정되어 버리기도 했다.
“시어머니가 없어도, 시아버지인 내가 두배로 사랑해주마.”
“장모인 제가 대신 엄마노릇을 하여, 시누이 결혼까지 시켜야겠어요.”
엄마의 부재가 확정될 때마다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나는 차마 울 수 없어서, 얼른 삼켰다.
긴장감이 맴돌던 상견례를 마치고 얼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근처에 있는 순대와 내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처음으로 청심환까지 먹었던 상견례를 마치고 홀가분하고 들뜬 마음으로 순대를 찾아 나섰다. 하필 일요일이라 모두 문을 닫는 바람에, 한참을 걸었다.
아빠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순대를 찾아서 집에 가야 해. “라고 말했다.
입력과 다르게 출력되어 아빤 결국 내장탕을 구매했다.
나는 근처 분식집에서 들러 순대를 구매했다.
아빠와 나의 대화를 엿들은 주인아주머니는 ”상견례 다녀왔는데 웬 순대? “라고 물으셨다.
‘아, 상견례에서 얼마나 못 먹었으면 곧바로 순대를 사러 왔겠어.라고 생각하시겠지?’
이럴 때마다 아빤 “제 와이프가 임산부라서요.”라고 말한다.
임산부 맞다. 배 안에서 암덩어리가 크고 있고, 복수가 차서 배가 불룩하다. 먹고 싶은 음식이 종종 생각나지만, 몇 입 먹고 나면 구역질을 한다.
직장을 다니느라 일주일 만에 만난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렸다. 감정선이 요동치는 것도 임산부와 닮았다.
“어제는 마약성 진통제를 먹고 숨이 턱 막혀서 한 시간 동안 울면서 생각했어. ’(하늘에 있는) 우리 엄마가 날 데려갔으면 좋겠다 ‘라고.”
엄마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인데, 이 말을 듣고 차마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를 꼭 안아주면서 엄마 등에서 눈물을 훔쳤다.
엄마를 진정시켜 얼른 먹고 싶다던 순대를 쥐어주고, 상견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마치 엄마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얼마나 궁금하고, 가고 싶고, 속상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