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암 환자의 보호자로 사는 것

by 단심

아침이 밝았다.

누군가는 하루의 시작이지만, 교대근무자인 나에겐 끝이기도 하다.

야간 근무의 특권으로 은근한 희열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사하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 출근하는 사람...
치열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을 지나치면

나의 퇴근길이 더 신나기 때문이다.


늘 자리가 없는 지하 주차장에서는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집에 도착해서 창밖으로 꽉 막힌 출근길 교통 체증을 보면 더욱 신이 난다.


오늘은 근무를 마치며 사내 식당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가

옆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를 마주쳤다.


식사를 마치고 그는 따뜻한 손으로 나를 붙잡으며 꼭 차를 얻어먹고 가라고 했다.

“힘이 너무 없어 보여, 꼭 마시고 가야 해”

“따뜻한 차도 얻어먹고, 오빠 에너지랑 열정도 좀 뺏어 와도 될까?”

“당연하지, 내 열정 가져가서 나 좀 쉬게 해 줘.”

“고마워, 오늘 하루는 힘이 없을 거야”

주변인들의 에너지를 한 스푼씩만 덜어서 나에게 양보해 주면 좋겠다.


어느 순간 텅 빈 마음의 빈껍데기만 남아버린 나였는데,

이제 껍데기마저 부서져버린 것 같다.


부정적인 감정은 나를 갉아먹고, 나의 남자친구도 갉아먹어버렸기 때문이다.

영원한 내 편일 것 같은 그는 “너의 부정적인 감정이 나에게 무기력함을 안겨준다”라고 했다.

그도 참고 참다가 솔직하게 말한 것일 텐데,

부정적인 생각이 전부인 나의 입방아는 그 뒤로 꾹 닫혀버리고 말았다.

멍하니 있는 순간이 늘었다.


엄마가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괜찮아?”라는 말에 진절머리가 났다.

지인과 친척들이 암환자에게는 직접 묻지 못하고, 모두 나에게 전화를 걸어 괜찮냐고 물었다.

한 달간은 괜찮아질 거라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지쳐

“아뇨, 안 괜찮아요.”라는 말을 해버리면, 사람들이 더 이상 전화를 걸지 않았다.


1년쯤 지나고부터는

가족 모두가 일상의 일부를 되찾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괜찮냐고 물어주지 않았다.

‘괜찮지 않음’은 더 쌓여만 가서

괜찮냐고 물어도 상처를 받았고, 괜찮냐고 묻지 않아도 상처를 받았다.


위로가 인색해질수록 위로의 크기를 실감했다.

위로라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구나.

나의 아픔을 헤아릴 수 없어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줄 몰라서 위로를 아끼게 되는 거구나.

그럼에도 용기 내어 나를 토닥여주는 손길이 저 사람의 애정이고, 연륜이고, 배려구나.

평생 잊으면 안 되겠구나.


누군가, 암환자의 보호자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하나? 묻는다면,

“괜찮아?”라는 질문 대신에,

“밥은 먹었어?”, “오늘 뭐 해?”와 같은 일상적인 질문들을 주기적으로 건네주고

자주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우울함과 슬픔에 잠식되어 일상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므로,

울고만 있지 않도록 감시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일상을 되찾아갈 무렵에는

‘가족이 아픈 데 내가 웃어도 되나?’, ‘내가 행복해도 되나?’라는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다.

웃어도 된다고, 웃어야 힘이 나고 그 힘으로 가족을 돌볼 수 있을 거라는 말을 꼭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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