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4년 전 영상을 보고 “저때부터 내가 아팠어.”라고 말했다. 내가 대학교를 마치고 1년간 집에서 살았던 때이다. 처음으로 엄마 아빠의 일생을 엿보고, 그들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도 두 눈으로 보고 느꼈던 때이다.
내가 취업을 위해서 집을 떠나는 날, 엄마는 나 모르게 울었다. 30년간 시부모님에게, 남편에게 존중받지 못했던 엄마는, 1년간 딸이라는 커다란 내 편이 생겨서 처음으로 일상에 여유가 생겼는데, 다시 사라진다고 하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래서 그랬을까?
엄마는 21년도 건강검진까지 아주 건강했다가, 22년도 8월 간내 담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나는 다음날 아침부터 일어나 엄마가 먹고 싶다는 미역국도 끓여놓고, 반찬도 부지런히 만들어 놓았다. 내 체력을 미리 끌어다 쓰고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 일을 해야 한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은 자차 10분, 버스 2시간, 지하철 30분, 기차 2시간, 버스 20분, 총 5시간이 걸린다.
돌아가는 기차에서부터는 눈물을 꾹 참는다. 이제 엄마가 말기암을 진단받은 지 1년 8개월이 지나가는 데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항암 효과가 좋아서 암이 한참 줄어들 때는 의연한 척이라도 가능했는데, 4차 항암치료까지 실패하고 임상연구조차 불가능한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의연한 척이 안된다. 집에 돌아오면 수돗물을 틀어놓고 엉엉 울어버려야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다음 날 쌍꺼풀이 풀린 부은 눈으로 회사에 출근하는 날이 늘어간다.
서울에 살면서 교대 근무로 일함과 동시에 쉬는 날마다 본가로 엄마를 보러 가는 일은 체력과 마음이 닳도록 닳는다.
분명 야간 근무를 하느라 잠을 전혀 못 잤는데도, 본가에 가면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은 냄새가 난다. 마치 어릴 적 외할머니집에 가면 나던 할머니 냄새와 오래된 먼지 냄새와 같은. 그래서 내 체력을 당겨서 쓰더라도 밀린 청소를 하고, 냉장고에 오래된 반찬을 버리고, 따뜻한 국을 끓이기 시작한다.
집안일에는 문외한이던 아빠는 환갑을 앞둔 나이에 처음으로 된장국 끓이는 법을 배우고, 밥 안치는 법을 배웠다. 그럼에도 까다로운 암환자의 입맛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엄마는 하고 싶은 일은 많은 데 몸이 힘드니 잔소리가 늘면서 기대감은 커지게 되고, 바깥일에만 신경 쓰던 아빠는 아무리 노력해도 많은 것을 놓친다. 이런 아빠에게 실망감만 커진 엄마는 짜증을 늘어놓고, 아빠는 살면서 고생시킨 자기 때문에 아픈 것만 같고, 대신 아파 줄 수 없으니 그저 참는다. 이 것이 두 분의 매일 같은 일상이다.
이청준 작가님의 “축제”를 원작으로 다룬 [축제] 영화를 보면, 인간의 일생을 ‘아이로 태어나 살다가, 늙으면 다시 아이가 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영화 속에서는 치매에 걸려서 아이가 되었는데, 우리 엄마는 암 말기를 선고받고 일찍 아이가 되었다.
약은 안 먹겠다고 고집 피우고, 감정표현이 서툴러 모든 감정을 짜증으로 표현한다. 보살핌주어야 할 엄마라는 존재가 보살핌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것 같다. 왜 짜증내는 거야? 물으면, “나 때문에 네가 고생하는 게 미안해서.”라고 말한다. 아무리 “미안해라는 말보다 고마워라는 말을 하면 되잖아” 알려줘도 변하지 않는다. 하긴, 말기 암이라는 사실도 아직 인정하지 못했는 데 많은 걸 내가 바라게 된다.
그래도 짜증 낼 수 있다는 건 그 정도 체력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겨울부터는 차를 타기 힘들어하고, 누워있는 시간이 늘었다. 때론 신생아처럼 밥도 거르고 잠만 자던 날도 있었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보다, 잠만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굉장히 고통스럽다. 언젠가 잔소리 많은 엄마가 그리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