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의 보호자로 사는 것
인생이 딱지치기 같다.
비가 온다고 중요한 행사가 취소되었다가,
비가 안 온다고 행사를 재개한다고 했다.
결국, 비가 와서 행사를 치르지 못했다.
수시로 엎치락뒤치락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딱지치기 결과에 기뻐하거나 아쉬워할 틈도 없이 다음 딱지치기로 넘어가야 한다.
오히려 감정을 누릴 수 없어서 좋을 지도 모른다.
슬픔을 일로 잊으면 되니까.
경사스러운 일과 불행한 일을 ’ 경조사‘ 하나로 묶어 이야기하는 것도 딱지치기 같다.
앞면과 뒷면을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엄마는 3개월 여명을 앞둔 말기암 치병과 동시에,
자식의 상견례를 치러야 하는 순간이 왔다.
엄마의 주치의는 첫 만남에서부터 숫자로 이야기했다.
“여명이 7개월 예상됩니다.”
일 년이 지난 후에는 여명이 6개월 남았다고 했다.
1년 6개월이 지난 후에는 여명이 3개월 남았다고 했다.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얼른 자녀들의 결혼을 치르라 했다. 아무리 숫자에 불과한 일이라고 생각해도 점점 짧아지는 숫자는 가족들의 마음을 성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첫째 아들은 두 달 만난 여자와 첫눈에 반해 결혼하겠다고 했다.
결혼식 날짜를 정하기에 앞서 나는 생각했다.
엄마가 자식들 결혼식을 못 보고 가는 게 더 불편할까? 혹은 아픈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순간이 더 불편할까?
이 고민에는 사실 선택지가 없다. 엄마의 유한한 시계는 내일이라도 멈출 것 같다. 그렇다고 두 달 만난 여자와 당장 내일 결혼시킬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결혼식은 천천히 하더라도, 일단 엄마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상견례를 치르기로 했다.
복수천자를 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엄마의 배는 다시 부풀러 올랐다. 엄마는 배가 불편해서 상견례 전 날까지도 ‘내가 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분명 회사를 다니면서 감정이 아니라 사고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버린 나였지만,
엄마 일에는 사고보다 감정이 앞섰다.
표정과 감정을 죽여버린 회사에서도, 엄마 이야기가 나오면 눈에 눈물이 글썽이곤 했다.
벚꽃 이야기에는 ‘엄마는 이번 벚꽃이 마지막 벚꽃일까?’ 생각했고, 엄마와 여행 간다는 선배의 이야기에는 부러움이 눈앞에 선명했다.
“ 우린 무엇으로 만나 무엇으로 남을까 “
아도레의 < 소용없는 마음들 > 노래 가사이다.
엄마랑 나는 친구로 만나서 평생 녹두죽을 보면 생각나는 존재로 남으려나?
줄탁동시와 같은 관계로 만나서 인생의 물음표가 생기는 순간마다 생각나는 존재로 남으려나?
그 무엇으로도 엄마라는 존재의 크기를 담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이제는 나 혼자서 인생의 물음표를 헤쳐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구나 생각해야만 한다.
어릴 적부터 내 앞에서 외쳤다.
“울지마, 엄마는 강해. 넌 엄마 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