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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소제동 대동천
볕이 좋아 드로잉을 했다.
by
소정
Oct 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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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가을 가을 한 날이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상쾌한 내음과
그 내음을 하나라도 더 맡아보고자 마스크를 벗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대동천 산책로에는 가을을 온몸으로 받고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천변을 따라 리듬에 맞추어 걸어간다.
나도 천천히 가을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본다.
볕이 잘 드는 곳에 방석을 깔고 스케치북과 펜을 꺼낸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가만히 살펴본다.
'레몬에 가까운 노란색 벽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집 앞 작은 정자에서 바라보는 이쪽은 어떤 느낌일까?'
'저 집 안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집 안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사시사철 변모하는 작품일 것 같아.'
대상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단순한 표상으로서의 그림이 아닌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요즘이다.
펜을 들고 전체 윤곽선을 잡는다.
그리고 아래에서부터 위로 하나둘씩 세밀하게 그려나간다.
마치 블록 쌓기나 주춧돌부터 차곡차곡 집을 쌓아 올리듯이
그렇게 그림을 그려간다.
햇볕이 들 때는 목덜미가 뜨거울 정도로 덥고
구름에 가려질 때는 시원하다 못해 쌀쌀하다.
온탕과 냉탕을 옮겨 다니듯이 그림을 그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본다.
예전 같았으면 "안녕하세요?", "여기 너무 아름답네요."
하며 말을 먼저 걸었을 텐데,
지금은 의식하지 않은 척 그림에 열중한다.
나이를 먹다 보니 사람에게 얻는 것보다 상처받는 일들이 많았기에
아직 상처에 얼룩진 내 마음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점점 새로운 사람들이 두려워진다.
본디 인간이란 인간에게 상처를 받고 인간에게 위로를 받는다고 하던데
나는 언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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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에세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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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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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바람길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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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공간과 풍경을 그리고 글을 담습니다. 여행드로잉에세이 <우리가족은 바람길 여행을 떠났다 >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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