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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Jun 22. 2022

'영화마을'에 대한 소회

인천 영화마을



[영화마을]


노란색 바탕에 부엉이가 그려져 있고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으로 쓰여진 '영화마을'

'영화마을'의 간판을 보고 공감 여부에 따라 세대가 달라질 것 같다.


지금이야 OTT서비스로 어디든지 원하는대로 다양한 영상을 시청할 수 있었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DVD 대여점에서 빌려 봐야 했다.

DVD 전에는 VCD, 더 예전에는 비디오테이프...


내가 초등학교 시절(1980년대)에는 비디오가게 아들이 최고의 친구였다.

어떻게든 친하게 지내려고 간이야 쓸게야 내 주고 친해지면 친구가 자기 가게로 가자고 한다.

가게 안 구석진 방 안에 들어가면 친구가 보고 싶어하는 비디오를 같이 볼 수 있다.

'후레시맨', '란마1/2', '우뢰메' 등 시리즈물을 친구덕분에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즈음에는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을 갖고 있는 친구랑 친해지려 노력했던 것 같다.)


중학교 즈음에는 비디오플레이어가 대중화가 되어 대부분의 집에 한 대씩 있었다.

(당연히 우리집에도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시며 비디오플레이어를 사오셨다.)

비디오플레이어는 많아지고 비디오테이프는 한정되어 있으니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비디오테이프 예약전쟁이 한창이었다. 비디오가게 사장님과 친해져서 신상 비디오를 선점하는게

이 때의 목표였다. 신작을 먼저 보고 친구들 앞에서 늠름하게 자랑하는 그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허가되지 않은 일본영화를 보는 데 열을 올렸던 것 같다.

지금이야 일본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있었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일본영화는 금지였다.

어둠의 경로(?)를 따라 혹은 친구의 소장용을 돌려 가며 낮은 화질의 철도원, 러브레터와 같은

일본영화를 보면서 일본문화와 영화에 심취했었다.


그 이후로는 비디오가게가 DVD전문점으로 점점 바뀌어 갔다.

영화는 다양한 경로로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가게들은 하나 둘씩 사라졌다.


시대가 변화면서 매체가 변화하기에 당연한 수순이었겠지만

내 유년기에서 사춘기 시절을 함께 한 그 곳이 없어지는 건 서글픈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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