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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Nov 01. 2023

하루에 10분이라도 광합성을 하자구요.

규당 고택

아침에 집을 나서서 전철이나 차를 타고 회색빛 건물에 들어갑니다. 무채색의 옷을 입고 주어진 일을 처리하고 가축이 사료를 먹듯이 점심을 때웁니다. 식곤증이 찾아와 허벅지를 꼬집으며 오후를 버팁니다. 집에 갈 시간이 다가오네요. 슬슬 컴퓨터 전원을 클릭하려는 순간 '오늘 안으로 이 일을 처리해야 해요.'라는 비수가 내 귀에 꽂힙니다. 오늘도 야근. 캄캄한 밤이 되서야 그곳을 빠져 나옵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터벅터벅 발걸음을 떼던 중 하늘을 쳐다 보았습니다. 매연과 네온사인에 갇힌 거무틱틱한 하늘을 보며 내뱉은 한 마디
'언제 햇빛을 봤더라?'

하루에 10분이라도 햇빛을 쬐기로 했습니다.  광합성 작용을 하면 비타민D도 생기고 우울감도 낮혀준다고들 하잖아요.

점심을 평소보다 빨리 먹고 건물 밖으로 나옵니다. 햇빛이 이렇게나 눈부신 것이었나요? 제 행색이 수년간 지하 감옥에 갇혔다가 출소한 이가 마주하는 해의 밝음에 눈을 뜨지 못하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나만의 공간을 찾아봅니다. 길 건너 작은 벤치가 보이네요. 누가 먼저 앉을까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다행히 오늘은 제가 주인입니다.

자리에 앉아 크게 숨을 쉬어봅니다. 따스한 온기가 온 몸에 전해집니다. 셔츠 소매를 접어 팔꿈치 위까지 올려봅니다.조금이라도 더 빛을 더 받아볼 요량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습니다.
감긴 눈꺼풀 사이로 울긋불긋한 색감이 느껴집니다. 모니터를 바라보느라 충혈된 눈동자에게 햇빛 마사지를 해 줍니다.

햇빛을 쬐는 동안만이라도 생각을 멈추어 봅니다.  '잠깐 정지!'  혼잣말을 하고 의도적으로 멍을 때립니다. 복잡하고 무거워진 머리를 비웁니다. 잡념을 덜어냅니다. 그대신 바람 소리, 공기 내음, 해의 손길을 채웁니다.

그렇게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자, 다시 시작해 보자고!'
자연이 주는 힘으로 다시 전쟁터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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