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여행이 나에게 찝찝함으로 다가왔다.

by 소정


보통 여행을 나가면 두꺼운 가이드북은 여권과 지갑 다음으로 꼭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었다. 가이드북을 깜박하고 나가면 그날의 여행은 불안과 초조로 망치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 여행은 트렌드에 맞추어 스마트폰을 활용하기로 했다. 여행 전 관광지와 숙소를 구글맵에 저장하고 말레이시아에서 현지 유심으로 교체하였다. 스마트폰으로 여행을 하니 신세계였다.

두꺼운 가이드북은 필요 없었다.

여행의 모든 일정과 장소는 구글맵과 여행 앱으로 관리하면 된다. 오늘 일정을 확인하고 표시된 구글맵의 안내에 따라 버스를 타고 내비게이션을 따라 걸어가면 쉽게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걷기 싫거나 힘이 들면 그랩(GRAB: 동남아의 우버라고 생각하면 된다.)을 불러 택시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동하면 된다.

즉 스마트폰에 저장된 일정을 따라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대로 움직이고 보고 먹으면 된다. 길을 잃을 일도 일정을 조정하려 고민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편하고 실수가 없으니 스마트폰만 있으면 무적!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런데...

구글맵을 따라 버스 시간을 맞추어 정류장에 나가고 주변 맛집을 검색하고 일정을 체크하는 내 모습이 우리나라에 바쁘게 하루를 보내는 시간과 일정에 쫓겨 사는 일상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이 아닌 직장생활을 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하루를 마치고 오늘 있었던 일을 되돌아볼 때는 예전과 달리 인상 깊은 장면이 별로 없었다. 하루의 기억은 스마트폰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스마트폰만 보고 길을 찾아가는 게 다였다.


예전처럼 지도를 보고 거리와 건물을 외우고 주변을 살펴보지도 않게 되었다. 길을 걸어가며 주변의 나무와 사람들, 동네를 볼 기회도 적어졌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니 흔히 인싸(?)나 파워블로거들이 올린 여행지의 인증의 횟수가 늘었다.

그래서 스마트폰 대신 가이드북을 다시 들었다. 무거운 가이드북은 여전히 여행 중 귀찮은 짐이었으나 길을 걸으며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고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고 그곳의 냄새, 바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가 맞는 사람인가 보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되, 이용의 횟수를 최소화하고 아날로그식 여행으로 돌아갔다. 길을 잃는 불편함이 새로운 골목길을 알게 되었고 인터넷 검색 대신 현지인들과 대화하게 되었다.

무조건 편리함이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아직도 나는 불편하고 귀찮은 예전 방식의 여행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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