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지옥에 입성하다
아이를 어렵게 응급제왕으로 출산하고 지옥같던 훗배앓이와 원인모를 고열로 2주가 넘는 입원기간이 지나갔다. 도저히 불편하고 딱딱한 병원침대를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제발 조리원에 보내달라고 사정사정을 했고, 아직 회복이 완벽히 되지는 않았지만 보내주겠다는 의사의 말에 바로 짐을 쌌다.
조리원에 가기 전에 2주넘게 하루에 2병의 항생제를 맞으면서도 모유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내 스스로가 원한 선택이었기도 했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액을 두병을 달은 채 콜이 오면 바로 수유를 시도하러 갔다. 약기운 때문인지 젖도 잘 돌지 않고, 아무리 유축을 해도 나오는게 없어 직수를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수유에 몰입했는데, 그래도 나오는지 안나오는지도 모를 젖을 아이가 필사적으로 먹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나도 모르게 힘든줄 모르고 무리해서 모유에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산후조리원에 가면 여왕같은 일상이 펼쳐지는 줄만 알았다. 친구들이 수유콜은 가급적 저녁엔 받지 말라고 푹 쉬라고 했는데 나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막상 조리원에 입성하고 나니 더 집착을 하게 되었다. 2주만에 제대로 젖이 돌기 시작하는 느낌이 나서 낮에도 밤에도 수시로 모유수유실에 드나들었는데, 이 조리원의 간호사들은 정말이지 이상한 사람들 뿐이었다. 젖이 안나오는 것 같으니 분유랑 혼합하는게 어떻겠냐고... 자다 깨면 옷이 젖을 정도인데 젖냄새가 아니라고만 했다. 이미 모유만으로는 부족해서 병원에서부터 분유도 먹이고 있었지만 최대한 모유를 먹이고 싶은 마음에 더 열심히 틈나는대로 가서 젖을 물렸다. 모유촉진 영양제까지 먹으며 진짜 열과성을 다했다.
체력은 부족했고, 살은 쭉쭉 빠지기 시작해서 출산하러 병원에 갔을 때보다 13킬로그램에 빠졌고 너무 기운이 없었다. 수술자국은 염증때문에 아물지 않고 자꾸만 벌어져 결국은 다시 꿰매야 했고, 입원해서 조리원 와서까지도 한동안 샤워는 커녕 맛사지도 조심스레 받느리 조리원 천국을 누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다. 모유=모성 이라는 공식에 나를 끼워넣고 안간힘을 썼던 내 자신이 안쓰럽고 그 천국같은 곳에서 왜 쉬지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 역시 경험해봐야 알 수 있듯이 친구들이 조리원에서는 쉬라고 했던 말이 무엇인지 퇴소할 즈음에 알게되었다.
나중에는 너무 텀 없이 모유를 먹이는 바람에 아이가 병원에서 2주, 조리원에서 2주 동안 너무 학습이 된건지 젖을 물어야 자는 지경이 되었다. 조리원인데 콜이와서 전화를 받으면 젖먹이러 오라는게 아니라 아이가 너무 안자서 그러는데 엄마품에 안기고 싶은 모양이라고 와서 좀 안아주면 안되겠냐고 하는 여러번의 헤프닝이 있었을 정도! 그 결과 집에와서도 모유수유는 13개월 까지 계속 되었는데 나중에는 졸려도, 울어도, 아파도 젖을 물고있는 아이가 되고말았다.
열심히 한 덕분에 양이 많이 늘었고, 아이도 편하게 먹는 날이 많아졌다. 정말 모유 외길인생이었다!
너무 소중하게 품은 우리 아기 계속 안고있고 싶고, 오물오물 모유먹는 모습 보고싶어서 계속 했던 수유를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리원 라이프도 즐기지 못했고, 껌딱지가 되어서 엄마랑 붙어사는 아이가 된 것이 모유수유 때문인것은 확실했다.
덕분에 여전히 껌딱지에 엄마 바라기가 된 우리 딸아이 아직도 엄마 쭈쭈 맛있었다며 먹는 시늉을 하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는데 가끔 놀랍다. 기억이 나는 것인지.
난임으로 어렵게 임신했고, 그만큼 간절했기에 출산하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과 포부를 참 많이도 가지고 생각했는데, 그것들을 해내기 위해 너무 애썼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짠하다.
드라마"산후조리원"은 정말 어느정도 맞는 부분이 있다. 특히나 모유를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 주변의 시선, 주변의 입장도 어느정도 작용을 한다는 것도. 사실 모성도 그렇지만 아이의 건강 때문에도 모유를 선택했지만, 남편이 늦게까지 모유를 먹고 자랐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또 의무감이 앞었던 것도 있었다.
스스로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거의 입원 2주 동안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서 단유가 될 수도 있었지만 포기 하지 않고 해냈고, 아이가 잘 따라주어서 서로의 노력으로 13개월간 건강하게 모유수유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나와 같이 난임을 겪으며 아이를 임신하면 해주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 엄마들이라면 너무 많은 것을 하기 위해 내 몸을 혹사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아이가 너무 소중하지만, 내가 건강해야 아이도 지킬 수 있고 더 잘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의무와 스스로의 기준 속에서 살았던 지난날의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이제는 좀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