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도야? 나도야 !
어느 주말, 2주 연속으로 남편에게 아이를 부탁하고는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지난주에는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 이번주는 남편 친구 와이프, 남편과 나를 소개시켜준 주선자인 내 친구의 친구와의 만남.
아이를 두고 나오는 주말의 자유시간.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왔다는 희열과 약간의 걱정, 그리고 주말에 혼자서 장거리 운전을 하며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즐거움까지.. 여러가지 감정들을 느끼며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달렸다.
한 친구는 3년 전 아이 돌잔치 때 본 이후로 사업 차 외국에 나갔기에 얼굴을 보지 못했고 한친구 역시 우리 아이 돌잔치 때 보았으니 3년만인 셈이다. 국내에 있어도 아이 키우느라, 코로나가 생활을 덮쳐버린 이후로는 만나지 못했다.
그 동안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는 말 안해도 뻔하지만 나는 육아 하느라 바빴고, 외국에 간 친구는 사업때문에 바빴을 것이다. 나보다 5개월 먼저 결혼한 다른 친구는 나보다 2년 정도 늦게 아이를 임신해 지금 한참 걷고 뛰기 시작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고, 둘 다 가장 아이 키우기 힘든 시기라는 듯 아이의 일상을 신나게 떠들어 댔다.
- 와 진짜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 그러니까! 우리애는 잠도 얼마나 늦게자는지~ 잠 잘자고 잘 먹기만 하면 된다니까~ 너는 그래도 나보다 낫지~
- 아니야 얘 요즘 얼마나 뛰어다녀서 잡으러다니기 바쁜데~ 얌전해 보이지만 진짜 얼마나 힘들게 하는데~
- 하긴~ 나도 작년에 그랬다! 그래그래 맞아 지금이 제일 힘들 때 맞네~ 우리애는 말이라도 잘 하니 의사소통도 되고 많이 움직여도 제 몸 쓸 줄아니까 다치기도 덜하니 걱정은 안해도 되니까~
- ……………………………… 나 애낳지 말까?
이것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사이 친구가 대화의 틈에 들어와 훅 던진 말 한마디.
“나는 애 낳지 말아야겠다. 무서운데?”
친구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고, 해외에서 잠시 들어와 갑작스레 시험관을 시작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싸~한 공기가 감돌고, 정적이 흘렀다. 다시 그 정적을 깬 것도 친구였다.
“아니, 너네 하는 이야기 들으니까 너무 겁나는데?”
불쾌하거나 속상하거나 그런 느낌이 아니어서 순간 안도를 했다.
에전에 나였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아이를 가지려고 그렇게 애쓰고 있을 때 친구들이 내 앞에서 육아이야기를 이렇게 스스럼 없이 계속 했다면 나는 괜찮았을까? 생각해본다.
임신이 너무 간절 했을 때는 지나가는 임산부만 봐도, 아이를 안고가는 부부나 아이엄마만 보아도 주르륵 눈물이 흐르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나의 행동이 너무 배려없이 느껴져서 말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지만, 우리 셋 중 그아무도 말을 하지 않자 결국 내가 말을 이어갔다.
- 맞아 아이 키우는 일이 정말 쉽지는 않아, 아이 키우는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고, 아이 하나 키우는데는 어른 넷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을 만큼 육아하는데는 손이 많이 가고, 감정소모 역시 정말 크지만 그래도 할만하다고 느끼는 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좌절하거나 실망하는 날들보다 행복하고 보람있고 기쁜 마음이 드는 날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겠지? 오늘 우리의 수다는 단지 그냥 아줌마들의 흔한 수다일 뿐이지 뭐… 나도 사실 시험관 했잖아 알고 있었지?
- 응~ 알고 있었지~
- 뭐야 너도 지금 시험관 하고 있어? 나도 시험관 했었어! 맙소사 나도야 나도.
- 너도야? 나 진짜 몰랐잖아~
- 얘 시험관 하다가 중간에 이식 못해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임신 한거잖아~
- 나만 몰랐구나~ 와 우리 셋 다 시험관 한거야??
우리는 참 신기하다는 듯 서로를 보며 그제서야 긴장감을 풀고 편안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지금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친구는 해외 사업장이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봉쇄되어 외출 조 차 할 수 없어지자 운영에 어려움을 느끼고 잠시 문을 닫은 채 국내에 들어왔다고 했다.
정기검진 차 갔던 병원에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어서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갑자기 시험관 아기 시술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냥 해보지 뭐’ 하는 생각으로 정보 없이 가볍게 시작했지만 하면 할수록 욕심이 생기고 임신테스트기 한줄을 보면 생각지도 못한 상실감과 허탈함에 스스로 놀랐다고 했다.
그러니 한 번도 이렇게 마음이 무너질 수 있는데 수없는 배주사를 맞으며 난포를 키우고, 배란을 기다려 아프고 고통스러운 채취과정을 지나 임신에 성공하지 못하고 이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얼마나 힘들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시험관을 했고,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가 되었지만, 그 때의 마음이란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사실 어찌보면 이 과정 자체 보다는 매 순간 순간 스스로 다져야 했던 때로는 삭혀야 했던 마음과 어떤 요인에 의해 쉽게 흔들리고 마는 멘탈을 잡는것이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인스타그램에서 난임계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거기서 만나고 일상을 나누는 많은 분들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을 아주 솔직하게 기록한 것을 볼 때, 인간이란 참 생각보다 나약하고 또 어떨때는 생각보다 강하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SNS에서 만나는 많은 사연들을 보면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다.
1. 아이를 기다리는 시댁 눈치
2. 여성의 문제로 시험관을 하는 경우라면 “나 때문에”라는 자책감
3. 친구들을 만나면 자기들은 육아를 하면서 힘들다며 “애없을 때 즐겨~ 뭘 그렇게 노력해.”
하는 친구를 만날 때
4. “마음 편하게 가져~ 스트레스 받으면 애 안생긴다?” 하는 친구들이나 어른들을 만날 때
5. 임신을 기다리며 힘든시간을 보낼 때 먼저 임신한 친구가 소식을 전하거나 “임밍아웃”을 했을 때
나 역시 다 겪었던 일이고 이 중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어른들의 기대와 그에 대한 죄송함, 나 때문이라는 “자책, 그리고 친구들의 “임밍아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아이”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아이가 어릴 적 하는 “자기 중심적 사고”처럼 내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는 더욱 더 가시돋힌 고슴도치 처럼 잔뜩 날을 세우게 되고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지금 돌아보면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었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그게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어였던 것 같다.
‘아니, 임신은 혼자 해? 안되는걸 어쩌라고!!’
‘쟤는 내가 아기 기다리는거 알면서 어쩜 저렇게 나한테 아무렇지 않게 임신소식을 전해?’
당연히 축복해야 마땅한 일임에 분명했지만 쉽사리 진심의 축하를 해 줄 수 없는 나의 현실이 너무 괴로웠다.
그런 생각과 마음들이 나를 더 병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시술 중일 때 친구를 만나 두 친구가 하는 육아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친구의 마음도 우리 앞에서 티는 내지 않았지만 홀로 귀가할 때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괜찮아, 괜찮아” 했을 수도 있을 일이다. 겪은 일이어도 지나고나니 다 잊은건지 참… 갑자기 친구가 말이 좀 없어질 즈음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고 싶어서 마무리를 했다.
- "어떤 이유든 자책 절대 하지말구, 병원에서도 일단은 잠시 쉬라고 하니까 남편이랑 운동하고 있는거 재미있게 하고 니가 생각했을 때 가장 좋아하는 일, 너를 즐겁게 만드는 일을 많이 하면서 기분을 좋게 만들었으면 좋겠어, 나는 마음이 편하면 아이가 저절로 찾아온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 가장 어려운거지만 내가 가장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 곧 좋은소식 있으면 좋겠다.”
그리곤 친구의 사업 소식과 남편이야기 등을 물으며 자연스레 흐름을 다른 이야기로 이어갔다.
우리는 다시 깔깔거리고 웃으며 아줌마들의 평범한 수다를 나누며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 몇 시간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우리는 언제가 될 지 모르는 다음을 기약하며 다음번에는 코로나가 좀 잠잠해져 가족끼리 다 같이 놀러가자는 이야기를 하며 헤어졌다.
다음번에 만날 때는 친구한테 꼭 이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얘들아! 나 임신했어~! 축하해줘~!" 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도 꼭 이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진짜 고생했어 너무 축하해! 그리고 나도 둘째 임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