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된다는 두려움
연출: 조현훈
출연: 구교환, 이민지
요즘 들어 고민이 많다. 왜 선택하는 대부분의 영화와 책들이 이다지도 외롭고 절절하여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걸까. 내 마음이 가서 고르는 것들인데 이래버리면 마음이 너무 힘들다.
내 기억속 어디에 이 영화의 제목이 남아있었는지 모르겠다. 제목을 보는 순간 언젠가부터 내가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는 기억이 깊은 곳에서 떠올랐다. 그러니까 나는 늘 그렇듯,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끌리듯이 영화를 보러 갔다.
"저는 태어날때부터 진실하지 않았어요. 그거 아세요? 제가 처음 배운 말은 거짓말이었대요. 저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거에요."
이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말은 영화의 처음 그리고 영화의 중간 다른 둘의 입을 통해 나온다. 빛과 함께 떠도는 그 말이 처음 공기를 진동했을 때 그것이 어떤 슬픔의 테두리마저 건드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감정없는 억양으로 내뱉는 소현의 모든 말들이 슬프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의 어려움. 그 어려움과 어색한 공기를 본능적으로 안다는 것이 소현의 불행이다.
소현에게 다른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내 생각에 너는 팸생활은 안맞는 거 같아. 어디 쉼터같은데 가서 조용히 있어."라고.
소현은 자기가 더 눈치껏 맞추겠다고 애써 웃어보이지만 그 미소가 너무 절박하여 오히려 거부감이 일어날 정도이다. 그녀는 계속하여 그런 존재다. 스스로는 혼자있기 싫고,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서 있는 힘껏 노력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늘 겉도는 존재다. 붙임성도 없고, 분위기를 잘 맞추지도 못한다. 그들이 말하는 '팸'이라는 건 일종의 또래집단이어서 서로 죽이 맞는 친구끼리 어울려야 제맛인데 소현은 결코 누군가가 팸에 들어오라고 할만큼 매력적인 아이가 아닌 것이다.
소현이 원하는 것은 자유와 방종 어디쯤에서 되는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누군가 마음을 주고 의지할 수 있는 단단하고 끈끈한 얽힘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마음을 드러내면 자신의 오빠처럼 다들 부담을 느껴 자신의 곁을 떠날테고 결국은 혼자가 될테니 쉽게 그런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이 혼자가 된 곳에서 스스로 죽음을 결정한다. 또다시 혼자가 된 자신을 스스로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꿈과 환상의 어디쯤을 비집고 제인이 찾아온다.
제인이 등장하는 첫장면은 쇼와시대의 일본영화같은 느낌마저 준다. 살짝 눈을 내리깔고 있던 제인은 우수에 찬 눈을 들어 소현에게 말한다.
"돌아왔구나."
시간의 타래가 엉켜있어서 그걸 풀어내기가 어렵다. 그건 아마 소현의 기억때문이겠지. 누굴 거기에서 묻었는지, 누굴 먼저 만나고 누구랑 같이 있다 그 다음엔 누구랑 같이 있었는지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의 기억은 오빠와 함께 지내던 모텔방에서 오빠가 나간 이후로 엉켜있다. 오로지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살아간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제인과 함께한 시간은 꿈같다. 모두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제인만을 기다린다. 제인이 사라진 순간 그들은 모두 소풍날 아침처럼 김밥을 한 줄씩 먹고 각자 헤어진다. 영화상의 시간속에서 그들은 또다시 만나지만 이전의 기억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그들은 완전한 타인이다.
아니면 둘은 모두 소현의 이야기이고 다른 투명필름지에 그려져서 나중에 내가 겹쳐보아야 할 이야기인지 모른다. 하나는 뉴월드의 한 언니를 따라간 집 소파에서 자다 꾼 꿈일지 모른다. 모든 것이 다 이러하면 좋겠다는 소현의 바람일지 모른다. 결국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소현은 너무 외롭고 힘에 부치고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마냥 방황한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어린아이들이 은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비속어보다 은어를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더 강하다. 그건 자기 집단 이외의 다른 집단을 배척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끼리만 아는 것을 공유할 것이고 너는 결코 그 뜻을 알 수 없을 것이다라는 비웃음이다. 아이들의 은어에 대해 어른들이 "대체 그게 무슨 뜻이냐?"라고 물어볼 때 아이들은 대개 "아 이거 별 거 아니고 그냥 저희끼리 쓰는 거에요."라며 분명한 선을 긋고 그 뜻을 알려주길 거부한다. 그런 의도적인 선긋기와 차별화가 싫다.
+학창시절 내가 친구들을 따라 욕을 쓰거나 은어를 쓰거나 대학시절 같이 술을 진탕 마시거나 하다가 어느 순간 허무함에 빠져버린 기억때문일 것이다. 과연 내가 이렇게 비슷한 행동을 함으로써 얻는 것이 무엇일까. 안정감일까 소속감일까. 정작 집에 돌아오면 스스로 자신을 마구 더럽힌 느낌이 들었다.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 것 사이에서 나는 늘 변덕이 심한 사람이 되었다. 혼자라는 것은 여자들만 드글거리는 여중여고에서는 꽤 별난 애로 불릴만한 일이었고 그건 그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될만큼 심각한 일이었다. 심지어 선생님들도 부모들이 상담을 하러 오면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냅니다. "라고 하지 않는가. 별난 아이는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늘 친구들과 다니긴 했지만 무리짓기에 점점 지쳐버려서 나는 종종 같이 다니는 친구 무리를 옮겨다녔다. 등하교를 같이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점심을 같이 먹는 친구들이 있었고, 공부할 때 모여하는 친구들도 따로 있었다. 그건 내가 영리해서가 아니라 한 무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재미가 없어서였다. 결국 고3때 수능이 끝나고서는 거의 앞자리에 앉아 책만 읽었다. 혼자 다른 대학에 가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 두려움이 없었고 다른 지역으로 다니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슬픈 것은 내가 여전히 어떤 무리를 찾아다녔다는 것이다. 혼자라는 것은 아무래도 쓸쓸하기 때문이겠지.
+ 구교환의 제인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투명한 느낌마저 든다.
동그란 초콜릿 두개를 양볼에 넣고 슬며시 녹여먹는 이민지만큼 사랑스러운 얼굴이 있을까.
영화속 배우들이 너무 반짝거려서 보고 있는 것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