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와 도마씨
성급하게 행동하거나 자신의 견해만을 완강하게 고집하지 않는 것은 큰 지혜이다. 또한 자신이 들은 것을 믿지 않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곧바로 옮기지 않는 것도 지혜이다. 지혜롭고 정직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라.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지 말라. 1권 4장 P. 33
토마스는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내 직업은 심리상담사이다. 대학교에서 몇 과목을 가르치고 있으니 짬짬이 '선생'이기도 하다. 내 역할의 특성상 사람들은 '조언'을 구하러 나를 찾는다. 우리 모두가 이미 알다시피 조언을 구하러 온다고 해서 다 내 말을 듣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내 말을 다 들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미 마음을 다 정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 내 말이 소용이 없기도 하고 내 말이 최고다 할 만큼의 자신감도 없다. 오히려 자기 안에서 들리는 말과 타인의 말에서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의심하고 신뢰하며 나아가야 하는지 같이 고민하며 걸을 뿐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편하게 대할 수 없는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나는 옳다"라는 신념이 '너무' 확고한 사람들이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이 드러났을 때조차도 내가 맞았다는 주장을 버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하고 말다툼이라도 하면 당신은 백번 모두 '틀린'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들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견을 여러 의견 중에 하나의 의견이 아닌 단 하나의 의견으로 강요한다. 사람들이 그의 말을 따른 것은 그들의 완고한 고집 때문이지 그들의 지혜 때문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을 한쪽 끝에 두면 다른 쪽 끝에는 "모르겠다"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견을 물어보면 대답을 하지 않거나, 고개를 숙인 채로 알아듣기 어려운 작은 소리로 "모르겠어요"를 반복한다. 혹은 한결같이 "너 마음대로 해. 너 하자는 대로 할게" 말하는 친구이다. 처음에는 양보인 줄 알았으나 만날 때마다 피곤해지는 걸 보면 관계에서 함께 나눌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삶에 문제가 생기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나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계속 묻는다. 많은 경우 조언을 듣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거나 실망해서 "내 잘못이야"라는 자기 비난으로 종결된다. 나의 도마씨는 대부분 이쪽 끝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긴 내 말만 옳다고 믿는 사람이 심리상담에 올리 만무하다.
우리는 이런 양극단의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면 중간 어디쯤에서 만나야 하는가. 그것이 삶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인가. 아니다. 균형은 중간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양 극단에서 빠져나와 제3의 자리를 찾는 것으로 우리는 한쪽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우리 도마씨는 강인한 엄마, 똑똑한 엄마, 성실한 엄마의 자녀이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는 "엄마 냉장고에서 이거 먹어도 돼요?"라고 묻는다. '검열'당하며 성장했던 습관이 대인관계에서도 반복되어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게 익숙하다.
도마씨를 이런 극단에서 중간으로 자리를 이동하도록 돕는 것이 "나는 옳다! 너는 틀리다"의 다른 극단으로 향하라는 메시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쪽이 아니니 저쪽'이라는 식이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이런 오류를 범하는지.
제3의 길을 찾을 때 이쪽도 저쪽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방법이 있고, 이쪽도 맞고 저쪽도 맞으니 양쪽을 통합하여 제3의 길을 찾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토마스는 이 두 방법을 모두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네 평화를 맡기지 말라. 그들의 간섭이 옳든 그르든 너는 그대로 너일 뿐이다. 네가 추구하는 참 평화와 참 영광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는 내 안에서 평화를 누리지 않더냐(요한복음 16:33)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려 애쓰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이야말로 진정 큰 평화를 누리는 사람이라.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괴로움은 무질서한 사랑과 헛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226/ 3장 28절
1380년에 태어난 토마스 아 캠피스의 심리학이다. 토마스의 지혜는 이런 양극단을 초월하여 제3의 길, 즉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찾는 것이다. 동시에 두 극단의 모순을 알아차리고 그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양쪽의 진리를 가져오는 것이다. "사람을 신뢰하지 말라 그리고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라"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말이지만 또 가능하다. 그것이 사람의 일이고 진리의 성격이다. 우리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다. 내가 책이나 인터넷에서 사실이라고 얻은 정보가 진실로 그러한지 의심해야 한다. 토마스의 말대로 "자신이 들은 것을 믿지 않고 그대로 옮기지 않는 것이 지혜이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타인의 관점을 물어보는 것이 지혜이다. 그러나 이 말이 자기 의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옳다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해 의심해 보는 것이다. 혹시 수정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했을 때 기꺼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고치고 그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이 모순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맞다"와 "틀렸다, " "모르겠어요"와 "알려주세요"가 동시에 존재하는 삶이다.
두 극단으로 빠지지 않고 긴장을 인식하면서 "너는 그대로 너일 뿐이다"라는 자기 정체성을 누리는 것이 본질이라고 14세기 수도사 토마스가 우리 도마씨의 손을 잡고 말한다. 토마스의 이 글을 들을 때 나는 칼 로저서의 <진정한 사람 되기>에서 언급한 진정성 (authenticity, congruence)이 생각난다. 진정성 있는 삶은 타인의 기준에만 맞추거나 자기 욕구만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나 자신으로서의 내면 경험을 수용하고 왜곡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타인의 관계 안에서 유연하게 열린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역시나 진짜로 사는 삶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