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저장강박

토마스와 도마씨

by 권박

우리 도마씨는 일명 저장강박이 있다. 무엇이든 버리지를 못한다. 버리지를 못하면 집에 무엇을 가져오지 말아야 하는데 늘 그의 손은 물건으로 가득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음식이다.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검정 비닐봉지에 한덩어리로 넣어 냉장고에 쟁여놓았다. 냉장고에 자리가 없자 아파트 베란다에 쌓아놓기 시작했다. 도마씨의 엄마가 청소라도 하는 날이면 그는 발작에 가까운 화를 낸다.

도마씨는 길을 지나가다가 식당에서 사람들이 음식물을 남기고 나가는 것을 보면 불안감을 느낀다. 식당을 지나쳐 오는 길에 그 음식 생각이 계속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사람들이 버리는 밥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되고 화마저 난다. 강아지 밥을 준다는 핑계로 가져오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눈치가 보여 가져오지 못한다. 엄마가 울면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하셨는데 도마씨는 멈추기가 어렵다. 도마씨도 도망치고 싶은데 음식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어 몸에 저장하고 싶지만 소화가 어려워 먹고 토하기를 반복한다. 도마씨는 아주 말랐다.


"우리 애는 왜 그렇게 먹는 것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먹는 것뿐만 아니에요. 저번에는 보니까 어디서 나무 젓가락을 잔뜩 주워 왔더라고요. 그것도 누가 쓰고 버린 것을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예요"

도마씨는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서 가져왔다고 했다. 안 그러면 후회할 것 같다고. 나중에 못 가져온 것을 후회하며 밤에 잠을 못 자는 것보다 차라리 방에 가져다 놓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은 읽지 않을 책으로 가득 찬 우리 집 책장에 '버리기'와 관련된 책들이 얼핏 봐도 몇 권이 된다. 캐런 킹스턴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곤도 마리에의 <버리면서 채우는 정리의 기적>, 미니멀리즘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자이베르트의 < 단순하게 살아라> 등등.


그러나 우리 도마씨의 문제는 엄마가 생각하는 것처럼 '버리지 못하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불안정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큰 화재로 집이 타고 자신의 물건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기억하는 한 그는 늘 불안했고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최근 어렵게 입사한 계약직이 연장이 안된 후 그는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올 때 보았던 길 위에 버려진 비닐 포장지가 집에 돌아와서 계속 생각나 다시 나가서 주워왔다. '사회의 낙오자'라는 자기 인식이 '버려진 것들'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위의 언급한 책들의 저자들은 공통적으로 집에 물건이 많은 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정신적, 영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외부 공간의 혼잡은 곧 내적 혼란을 반영한다. 결국 나 자신의 내적 질서를 찾는 것이 먼저이다. 그렇기 때문에 "버려라" 이전에 버리지 못하는 나의 내면을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내가 마주해야 할 불안을 외면하고 도망치려는 방책으로 병리적 강박이 발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때로 이것은 성장기의 트라우마가 원인이 되기도 하고 현대사회가 조장한 질병이기도 하다. 심리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철학자 한병철이 그의 책 <피로사회>에서 성과 몰두적인 사회가 만들어낸 신경성 질환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생산선의 향상을 위해서 규율의 패러다임은 '성과의 패러다임' 내지 '할 수 있음'이라는 긍정의 도식으로 대체된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pp. 24-25


규율사회는 "~해서는 안 된다" 지배적인 메시지라면 성과사회는 "~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강요한다. 네가 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무슨무슨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결혼하려면 이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행복하려면 이것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강제아래서 사람들은 일종의 강박증 앓고 있는 것 같다. 타인의 결핍을 강조해서 물건을 팔고 자신의 결핍을 비난하며 물건을 사들인다. 무엇인가 소유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무엇이라도 하고 있어야 한다. 할 것이 없으면 인터넷 공간이라도 들어가 화면을 스크롤하기라도 해야 한다. 빈 시간, 빈 공간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여기서 "무엇"이 무엇인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이 문제이다. 불안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으로 과하게 몰입한다.


자신에게 유익되지 않는 것에 과하게 몰두하는 특징은 단지 도마씨뿐만 아니다. 도마씨의 물건 저장 강박과 나의 지식 추구 강박은 어쩌면 한 끗 차이도 안 날 수 있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지식을 얻고자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지식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늘의 별들을 알기 위해 연구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오만한 천문학자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겸손한 농부가 낫다(어거스틴, 고백록, 4권 인용).
내가 세상의 모든 것을 안 다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나의 행위를 심판하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지식이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아무 소용없는 것들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어리석다(p.26)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몰두해서 애써 얻었는데 정작 갖고 보니 골치 덩어리가 되었다. 오랜 웹서핑 끝에 구입한 집안의 최신 가전제품이나 유행을 따라 산 옷, 아이들 용품이 그렇다. 들인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짜증 난다. 뿐만 아니다. 자격증이나 박사학위는 어떤가?


서문에서 말했듯이 나는 이문장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가지고 한국에 귀국해서 상담학회 자격증을 따사 슈퍼바이저 사인이 가능해졌고 연구소를 시작해서 일이 자리 잡아가던 그야말로 한창일 때 만났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아무 소용없는 것들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나는 그동안 무엇에 그렇게 몰두한 것인가.


토마스는 하늘의 별들을 알기 위해 연구하면서 자신은 알지 못하는 지식인을 가리키면서 나를 직면시킨다. 그런데 토마스의 초상화를 보면 모두 책을 들고 있던데, 설마 그도 지식 저장 강박증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의 수도원 방에는 아무 물건이 없었지만 그의 머리에는 도서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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