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아무에게나

토마스와 도마씨

by 권박
" 자신의 마음을 아무에게나 열어 보이지 말라....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지만 모든 사람들과 교제할 필요는 없다" (p. 40) 1권 8장


되도록이면 모임을 피하라, 아무 여인과 사귀지 말라, 너무 자유롭게 교제하지 말라.....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자주 마주치는 충고이다. 지나치게 친밀한 교제를 경계하는 것에 대하여 토마스가 해준 말이다. 고마운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부과된 사랑에 관한 명령은 때때로 그 한계를 알 수 없어 어렵다. 그런데 영적 거장 토마스가 이렇게 말해주다니 깔끔하다. 그렇다고 사람과 교제하기 싫을 때 합리화로 사용하기 좋은 문구로 사용하면 안 될 말이다.


네 마음을 아무에게나 열어보이지 말라고 모든 사람들과 교제할 필요가 없다는 토마스의 말에 내향적인 사람들은 '거봐 내가 딱 그렇다니까'라며 힘을 얻는다. 여기서 강조점은 '아무에 거나'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열어 보일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과 사귈 필요는 없는데 그러면 어떤 사람하고 친구다운 교제가 가능할까.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아무에게도'와 '아무에게나'의 극단적인 선택지 말고 다른 관계 양상이 가능할까.


우리 사회에서는 관계도 스펙이다. 어린아이들에게 "너 친구 있니?"라고 묻는다. 친구가 있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필요한 친화력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고 친화력이 있는 사람이 세상 살기 수월하니 그럼 안심이 된다. 친한 사람들이 없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성인이 된 후에도 이곳저곳에 '친한' 사람이 필요하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능력 있어 보이기도 하고 사람들과 '두루' 사귀며 '원만한' 관계를 갖는 것이 성격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필요하다. 아무라도.


도마씨의 첫인상은 친절했다. 내가 말 한마디를 하면 꼭 '네'를 두 번 붙여가며 '네네'라고 말했고 문자에서 조차 네네 끝에 ^^ 표시로 문장을 마쳤다. 내가 왜 그렇게 하는지 물었을 때


"사람들은 친절한 사람을 받아줘요. 물론 제가 카리스마도 있고 외모도 좋고 재미있으면 그렇게까지 친절할 필요가 없겠죠"

도마씨는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아버지가 "너는 친구 한 명이 없냐?" 라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일로 어린 자신에게 말했었다. 어렸을 때는 간식을 사주었을 때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고 커가면서는 친절하게 밥이나 술을 사주면 되었다.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했다. 인싸까지는 아니어도 사회성 없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음식 사진이나 가끔 올렸던 인스타그램에 걱정거리를 하나를 적었다가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도마씨가 심리상담을 찾은 이유다.


사람은 자신을 타인과 연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자기 개방은 친구가 되고자 한다면 마땅한 전제이다. 나를 그에게 알리고 그를 알아가는 것이 친구 됨이다. 요즘 사람들은 나를 '그'에게 알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알리게 된다. 정보 공유의 효율성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한 사람에게 친밀감을 요청하는 부담감 대신 '누구라도' 나를 보도록 개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SNS에서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입었는지, 무엇을 샀는지 알려준다. 그러니까 마음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진짜보다는 '되고 싶은' 마음을 많이 보여준다. SNS에서 진짜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은 어쩌면 암묵적인 규칙을 깨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는 그렇게 진지해서는 안 돼요"


' 아차' 민망했다. 조금 뒤에는 수치스러웠다. 이제 도마씨는 자신을 열어 보이는 것을 얼마를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럽다. 그동안 자신은 타인의 감정을 받아주었는데 그들의 거절에 화가 났다. 도마씨는 이제 사람을 끊었다. 인스타그램도 접고 카카오 톡에 있는 친구들도 차단했다. 다시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지 의심스럽다.


"도마씨, 만약 도마씨가 아무나에게 도마씨 마음을 알릴 필요가 없다고 제가 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다시 정중하게 말하자면, 도마씨 아무하고나 친구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면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아무나에게 마음을 열지 말고 모든 사람 마음에 들려고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에게나'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개념이 그러하듯이 환대와 소외도 역설적으로 함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순례자이며 타인에게는 이방인이 된다. 타인도 나에게는 이방인이다. 이방인으로 우리는 소외감을 느끼고 소속감을 갈망한다. 이방인으로서 기본적으로 우리는 타인에 대한 의심이 있다. 타인은 위협이 되기도 하고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타자를 두려워하고 의존하기도 한다. 윌 버킹엄은 <타인이라는 가능성>이라는 책에서 이방인은 "떠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능력을 상실하면 우리는 타인과 연결하여 삶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밥 주는 주인집에 귀찮은 '식객'이 될 수 있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자각은 타인을 진심으로 환대할 수 있는 친절함을 갖게 한다. 우리 도마씨는 소외감에 두려워 쩔쩔매는 친절이나 자기 개방이 아니라 어떤 이방인을 환대할 것인지 혹은 어떤 이방인이 자신의 환대를 필요로 하는지 알아채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타인을 '떠날 수 있는 능력'이 더 단단해질 것이다'. 토마스 아 캠피스의 이런 단순 명료한 언어도 그 자신이 순례자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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