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너 자신에 관한 설명

토마스와 도마씨

by 권박
내 아들아, 쓸데없는 일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지어다. 수많은 일들이 너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너의 할 일은 오직 나를 따르는 일이니라. 이 사람, 저 사람의 말과 행동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대신해서 대답할 필요는 없다. 너는 오로지 너 자신에 관한 설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왜 다른 사람의 일에 끼어들어 참견하느냐. 시끄럽게 떠드는 자는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어라. 그들의 말과 행동에 맞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3권 24장


토마스의 책 3부는 ‘내적인 위로를 위한 조언’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의 위로는 덮어주는 위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속마음의 구석구석에 플래시를 비춘다. 숨으려고 토마스의 수도원으로 들어갔다면 착각이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저 사람은 왜 저러지?”에 신경을 쓰며 산다. 대부분 불편한 것이기는 하지만 요즘처럼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는 시대에는 타인들의 SNS에 올린 여행사진까지 ‘좋아요’를 눌러야 하기 때문에 더 바빠졌다. 토마스가 지금 시대로 순간 이동하신다면 그분 성격으로는 경악을 금치 못하실 수도 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일에 관여하고 상관없는 일에 분주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바랄 수 없다고 거의 단순하고 또 단호하게 말하실 모습이 상상 간다.


도마씨는 아침 출근길부터 신경증이 도진다라고 상담실 블루체어에 앉아마자 말한다. 도마씨 아파트를 나오면 곧바로 사거리가 있는데 아파트 내 사거리라 신호등이 없다. 사람들이 운전을 하도 괴상하게 하는 바람에 늘 아침부터 머리가 아프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 스티커를 붙이고 쌩 출발하는 저 차는 뭐지? 출근하고 자리에 앉으면 칸막이를 뚫고 키득키득 웃으며 소근대로 동료들이 짜증 난다.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시간만 축내는 그들이 한심하다. 최근에 친구와 저녁을 먹었는데 그가 한 말이 뭔가 불편하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전화해서 무슨 뜻인지 다시 묻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뭔가 찝찝하다. 최근에는 손발이 저려 한의원에 다니는 중이다.


신경증의 어떤 특성은 과도한 교감신경의 작용이다. 앞 회차 글에서도 소개한 일본의 자율신경 권위자인 고바야시 히로유키는 교감신경은 활동모드 때 작동되는 우리 신체의 자율신경 체계이다. 타인의 행동에 과도한 혹은 너무 긴 시간 동안 관심을 갖고 나의 대응을 고민하는 상태는 심신의 긴장 즉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신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신경증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타인에게 열려 있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닫는 시간이 필요하다. 삶의 브레이크를 거는 거는 기술 필요하다고 히로유키는 강조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렇게 많은 것에 신경 쓸 수 없다. 유한적인 존재라는 것.


아마도 600년 전의 토마스의 말 “아들아, 수많은 일들이 너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너는 오로지 너 자신에 관한 설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왜 다른 사람의 일에 끼어들어 참견하느냐”라는 말은 최근 베스트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 마크 맨슨의 이야기와 많이 비슷하다. “신경 꺼, 너는 모든 것을 잘할 수 없어. 인생은 어차피 불편한 것투성이야. 너는 너에게 중요한 몇 가지 가치에 신경 쓰라고” 마크 맨슨이 토마스를 읽었으려나? 순간 궁금해진다.


“저는 딴 사람들에게 정말 관심 없거든요. 저는 차갑다는 말 자주 들어요. 제발 저를 불편하게만 안 해주면 저는 정말 평화롭게 살 자신 있어요”


의자 끝에 앉아 도마씨가 진심으로 하소연한다.


“도마씨는 평화롭게 살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그것이 채워지지 않아서 속상하고 마음이 불편하시군요”


“나는 내 일에 책임지며 살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힘들고 지쳐요.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에요”


“도마씨, 이제 주의를 도마씨 마음에 집중해서 우리 같이 도마씨가 말한 평화롭게 살고 싶은 욕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해요 “


도마씨는 처음에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신경이 온통 타인들의 무책임에 쏠려 있다가 자기 내면으로 돌리려는 나의 시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타인의 잘못은 유창하게 설명할 수 있었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비폭력 대화>의 저자이자 실천가인 마셜 로젠버그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은 충족되지 않은 자기 욕구의 왜곡된 표현이라고 말한다. 깊은 내면 속에 있는 자신의 진짜 욕구를 먼저 알아채고 직접적으로 관계에서 연결하는 대화가 바로 평화와 공감의 언어이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우리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될 수 있어도, 결코 우리 느낌의 원인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느낌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자신의 욕구를 돌려서 표현하는 것이다” 99, 101


평화롭게 사는 것이 자신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찾는 여정은 짧지 않았지만 우리는 결국 도착했다. 도마씨는 이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쓰는 신경을 많이 끄고 자신의 내면을 돌볼 수 있게 된 첫걸음이었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무관심하면 훨씬 더 많은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 일에 관여하고 외부의 소동들에 신경 쓴 나머지 자신의 내부에 대해 숙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오랫동안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1권 11장)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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