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 영혼의 간헐적 단식

토마스와 도마씨

by 권박

영국 BBC에서 Eat, Fast, and Live Longer (먹어라, 금식하라, 그리고 더 길게 살아라)라는 다큐가 방송된 뒤로 먹는 것을 제한하는 식사 방법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끼니반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간헐적 단식으로 소개되었다. 간헐적 단식은 먹는 시간을 제한하는 식사법을 말한다. 현대인들의 많은 질병은 과식이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단지 식사량만이 문제가 아니라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무제한 식사시간도 과식에 해당한다. 우리 몸의 기관들은 쉬지 못한다.


수면은 우리가 오롯이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자기 전까지 몸을 과각성시키는 전자기기에 노출되어 있다. 잠자리에서도 언제든 알림이 오면 확인하려는 ‘대기 상태’가 이어진다. 요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잠을 푹 잤다는 느낌을 받는가?"라는 질문에 '예'라는 대답을 듣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나는 상담소에서 '도파민 중독'이라고 스스로 진단한 도마씨들을 종종 만난다.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전화기 화면을 스크롤해 내려가다가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자각하는 순간 더 우울해져서 오히려 멈추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도마씨를 단순히 미디어 중독자라고 몰아갈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도파민 과잉 섭취를 장려해 놓고 이제 와서 개인에게만 오롯이 책임을 묻는 것은 불공평하다. 세상은 끊임없이 자극을 통해서 우리의 주의를 요구하고 소비를 권장한다. 피곤하지만 멈출 수 없다. 고맙게도 이런 거대한 사회 현상만 탓하며 어쩔 수 없지 손 놓아버리고 싶지 않은 도마씨들 그리고 도마씨의 가족들이 상담소를 찾는다. 다시 말하지만 도마씨를 단순히 도파민 중독자로 이해하서는 안 된다. 피하고 외면하고 싶은 그의 삶의 고통을 우리는 다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삶의 제자리를 찾아내는 것은 결국 도마씨의 몫이다.


사람이 일정 시간 음식을 제한하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많다고 한다. 세포 내 염증이 줄어들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기대하는 효과는 자가 포식(autophagy)에 의한 자정기능이다. 인지기능 향상도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효과이다. 나는 이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간헐적 단식의 효과를 단언할 수 없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점은 삶의 어떤 영역이든지 과잉을 피하려면 간간이 '제한'을 의도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파민 네이션>의 저자이자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 교수인 애나 랭키 (Anna Lembke)는 도파민 중독으로부터 회복은 절제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절제가 뇌의 보상 경로를 다시 제자리에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구속이 욕구와 소비 사이에 초인지적 공간을 만든다. 멈춤의 시간이다. 이때 우리는 충동에 휘둘리지 않고 선택을 살필 수 있다. 단기적 쾌락대신 장기적인 만족을 기대하며 인내할 수 있다.


14세기 수도사 토마스 아 켐피스가 말하는 것을 21세기 행동과학 연구자의 설명에서 듣는 느낌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우리 영혼이 마치 간헐적 단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단지 음식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듣는 것, 말하는 것, 읽는 것, 만나는 사람들과 생산적인 일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일과 가족과 친구들을 금식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경험이다.


프롤로그에서 말했듯 나는 그 멈춤의 기간 동안 수도원에서 일주일 간 리트릿 (retreat)을 가진 적이 있었다. 리트릿은 기본적으로 '후퇴하기' 혹은 '물러나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수도원으로 '물러난' 나는 침묵의 시간을 경험했다. 침묵은 수도원의 규칙이기도 했지만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졌다. 식사 시간에는 단지 조용히 그릇을 옮기는 소리만 들렸고 숙소 복도에서 누군가를 만나도 간단한 목례가 전부였다. 수도원에서 시간은 일과 사람과 소리를 제한하는 시간이었다. 침묵의 시간은 배타적이었지만 늘 열려있고 경계 없었던 삶에 자연스럽게 선이 그어지면서 안정감과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기도와 영적 책 읽기, 산책을 마치면 밤은 일찍 찾아왔고 나는 그 단순한 ‘일과’ 조차도 멈추었다. 높았던 마음이 낮아졌다. 모든 것이 단순했고 명료했다.


토마스의 말도 그렇다.

그동안 밖으로 향했던 눈을 먼저 거두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수도복을 입고 삭발하는 것은 별로 유익하지 않다. 진정한 신앙인은 생활 태도를 바꾸고 자신의 정욕을 철저히 억제하는 자이다. 그대는 남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수도원에 왔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진정 스스로 겸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곳에 머물 수 없다
1권 17장 62p

타인을 통해 나를 반영받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모든 연결을 멈추고 나 자신의 소리를 오롯이 들을 수 있는 시간 역시 필요하다. 물론 단식을 해야 하지 말아야 할 사람과 시기가 있을 것 같다. 아동들이나 임신 중인 여성은 금식이 적절하지 않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나쁜 음식을 ‘제한’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겠지만 간헐적 단식이 갖는 극단성 (예를 들어 16시간은 반드시 금식하고 8시간 안에서만 식사하는 것)이 해를 끼친다면 피해야 한다. 당뇨증 환자도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관계를 금식하고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은 오히려 더 우울하게 만들 수 있다.


모두가 수도원 리트릿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세상과 단절한 수도사처럼 살 수도 없다. 그러나 간헐적 단식이 우리 몸에 필요하듯, 영혼에도 필요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식이 적절하지 않다. 토마스의 글이 누군가에게 너무 ‘극단적’인 단식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충분히 ‘배타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영혼을 굶주리게 될지도 모른다. 헨리 나우웬(Henry Nouwen)이 말했듯, 고독은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단식하라. 그리고 사랑하라.


<미국 켄터키에 위치한 겟세마네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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