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와 도마씨
"옛날에...."
토마스가 수도원에 있는 그의 의자에 앉아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 답지 않게 이야기라니.
옛날에 걱정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어느 날 그는 완전히 풀이 죽은 채 교회로 가서 제단 앞에 나가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일 내가 끝까지 신앙을 지킬 수 있을지 알 수만 있다면......' 그러자 곧 마음속에서 하늘의 대답을 들었다. "네가 만일 그것을 안다면 무엇을 하겠느냐? 자, 그럼 지금 네가 하려고 했던 것을 행하라. 그러면 모든 일이 네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93(1권 25장)
걱정 많은 사람들의 말은 대부분 '만약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만약 내가 이것을 못하면 어쩌지'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안정감을 갖고 싶어 한다. 내가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서 확신할 수만 있다면 불안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불안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한 것이다. 모두 추측할 뿐이지 확신할 없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면 당연 문제가 생기게 된다. 질문은 어떤 사람은 미래에 대해 확신할 수 없어도 불안하지 않은데 어떤 사람들은 왜 과도한 걱정에 불안한 것일까?
많은 경우 과거나 현재에 불안과 관련한 부정적이거나 외상적인 경험이 있고 이것이 미래에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토마스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걱정에 사로 잡힌 사람도 아마 과거에 자신이 신앙이 깊은 줄 알았는데도 신앙을 지키지 못했던 수치스러운 경험을 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내가 신앙을 잘 지키고 산다고 해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할 수 있다.
'남자 친구가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이것이 내가 만난 도마씨의 불안이다. 도마씨의 이 걱정이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다.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잘 될 거야"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도 있잖아" 이런 위로로는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도마씨의 부모님은 싸움을 자주 했다. 부부싸움은 폭력으로 끝날 때가 많았고 어머니는 어린 도마씨를 집에 두고 며칠 씩 집을 나가셨다. 아버지는 술에서 깨어 계신 때가 별로 없었고 초등학생이었던 도마씨는 스스로 챙겨서 학교에 다녔다. 아버지도 집을 나가신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 친구에게 죽으러 간다고 문자를 보내서 주변 사람들이 발칵 뒤집어졌다. 엄마와 같이 아버지를 찾아 헤맸던 기억이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생생하다. 지금의 남자친구는 도마씨에게 헌신적인 사람이다.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도마씨는 남자친구에게 솔직하기가 어렵다. 흔한 연애 싸움도 해보지 못했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내 곁에 계속 있어줄 수 있을까.
토마스가 묻는다
”도마씨, 만약 남자친구가 당신을 영원히 떠나지 않겠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면 그러면 도마씨는 이제부터 무엇을 하시겠어요? “
도마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예, 걱정이 없어지면 무엇을 하겠나구요? ….. 모르겠어요. 그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
도마씨는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불안이 없는 삶을 살아보지 못해 봤는데 불안이 없어지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건지. 엄마가 다칠까 봐 늘 걱정했고, 아빠가 오늘도 술을 마셨을까 걱정했고, 엄마가 오늘은 집에 계실지 걱정하다가 이제는 남자친구 기분이 괜찮은지, 내가 싫으면 어쩌지, 내일 헤어지자 하면 어떡하지 불안한데, 만약 내가 다 괜찮다고 확신하면 나는 무엇을 할까. 나는 남자친구에게 서운한 것을 말하겠지, 이번 주말에는 어디 가자고 그동안 내가 같이 가보고 싶은 곳은 여기였다고 눈치 안 보고 편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것을 해보세요. 무슨 일이 생기는지"
토마스보다 몇 백 년 뒤 생겨난 근대 심리상담에서도 ‘acting as if’라는 기법이 있다. 아들러 심리상담에서 “만약에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나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라고 질문해 보고 “마치 그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살아보라”는 것이다. 만약 도마씨의 남자친구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하고 도마씨가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면 그렇다면 그녀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아이러니하게도 늘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은 정작 자기가 원하는 삶을 ‘미리’ 살아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불안을 느끼는 것이 가장 덜 불안하다고 할까. 진짜 고통스러운 일이 생길 것을 미리 예상해 놓아야 진짜 그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조금이라도 보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불안하지 않은 마음의 상태가 너무 어색해서 불안하지 않은 상태의 생각이나 행동을 시도하기 어려워하거나 많은 경우 매우 방어적이다. 자신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타당성을 이해받지 못한 것에 분개하거나 상담자가 자신을 압박한다며 뒤로 물러선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함께했던 ‘불안’을 벗는다면 벌거벗은 나를 어떻게 감당하라고.
이렇게 불안하다 보니 남자친구가 어떤 불편한 징후를 조금이라도 보이면 “거봐, 내가 어떻게 마음을 놓겠어" 라고 마음을 더 굳힌다. 현실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불안과 맞추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행동하기 전에 먼저 심상작업을 해보면 좋다. 예전의 ‘만약에‘가 불안과 위축을 가져오는 상상이었다면 이번의 '만약에’는 무엇을 가져올까. 처음에는 마치 문장을 완성하듯이
“만약 남자친구가 절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나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을 채우도록 한다.
“만약 남자친구가 절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다면 나는 지난번에 서운했던 일을 솔직하게 말해보고 싶다” 고 도마씨는 적었다.
나는 도마씨에게 눈을 감고 서운했던 그 장면을 떠올리고 그때 들었던 느낌을 남자 친구에게 말해보라고 상담장면에서 초대한다.
이제 눈을 뜨고 맞은편 빈 의자에 남자친구가 앉아있다고 상상하고 이야기해보도록 한다.
아주 단순해 보이는 이 작업을 도마씨는 주저한다. 눈을 뜨고 나를 보며 “못할 것 같아요”를 몇 번이나 말한다. 나는 도마씨를 격려 하고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해서 연습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갇혀있던 세계를 나오는 데 쉬울 리가 없다. 나도 도마씨도 인내가 필요하다.
토마스는 “자, 그럼 지금 네가 하려고 했던 것을 행하라. 그러면 모든 일이 네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보내면 그의 도마씨는 당장 그렇게 행동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도마씨는 몇 번이고 연습이 필요하다. 지금도 나의 도마씨는 여전히 불안과 함께 산다. 단지 지금은 어떻게 불안을 가끔은 벗어서 옷장에 걸어 놓는지 아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