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감정공포증

토마스와 도마씨

by 권박

심리학에는 감정공포증 Affect Phobia라는 개념이 있다. 말 그대로 감정을 느끼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람이 감정을 없애려고 한다는 말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데에 따르는 결과를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혹은 감정을 표현했을 때 타인과 감당해야 할 상호작용을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맥컬프 Leigh McCullough는 감정 공포증이 가진 사람들은 주로 어린 시절에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수용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받거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한 대가 지불을 해야 했던 환경에서 성장했을 때 사람은 감정 회피가 자동화된다. 그래서 원래 감정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불안이나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도마씨의 경우에는 반드시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억압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매우 밝고 행복했던 아이였다고 말했다. 학교에 가는 것이 좋았고 친구들과 노는 것도 즐거웠다. 호기심이 많고 이것저것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새로운 곳에 놀러 가거나 공원이나 자연도 지겹지 않았다. 도마씨는 오히려 행복한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도마씨가 즐거워하면 엄마는 “너는 이렇게 행복한데 나는 왜 불행한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거나, 한없이 무기력해하거나 혹은 갑자기 온 집안 청소를 시작하며 잔소리를 했다. 도마씨는 기쁜 감정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도마씨는 점차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안전하지 않은 거야' 여기게 되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를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특별한 감정을 경험하지 않는 것이 편했고 오히려 감정을 느끼게 되면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힘들었다. 점차 삶이 많은 곳에서 제한되었다. 관계 맺는 것을 피하게 되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화면 속의 인물들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 도마씨는 자신에게 감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불편했다.


“선생님도 불편해요”


어떤 면에서 도마씨 같은 사람들에게는 토마스가 나보다 더 편할 수도 있겠다. 나 같은 심리상담가들은 아마도 심리역동 접근이나 인지행동치료 같은 뭔가 있어 보이는 이론을 염두에 두고 감정공포를 ‘치료’하는 접근을 계획할 것이다. 도마씨를 이해하고 방어기제를 해제하고 감정을 경험하도록 해서 감정 조절을 조절한다….. 는 과정이다. 감정에 두려움 없이 접근하도록 그림이나, 음악이나, 감정카드 같은 도구들을 먼저 사용하고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천천히 노출시키는 것이다. 꽤 그럴듯하지 않는가. 그럼 도마씨가 수도원에 가서 토마스를 만나면 그는 무엇을 듣게 될까?

토마스는 동문서답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선한 양심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
(1부-20장)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양심으로 답하는 것이다. 토마스는 어쩌면 사람들을 피하고 미디어를 안 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되레 물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항상 조심하는 것보다 집에 머무르는 편이 낫다"


모두들 사람을 피하지 말라고, 감정을 더 느끼라고, 네가 지금 이러는 것은 잘못된 거라고 말하는데 토마스는 오히려 집에 있어라, 사람들 많이 있는 곳에 가서 왜 힘들어하냐, 오히려 집에서 홀로 고독하라고 말한다.

심리치료에는 역설기법이 있다. 문제적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하지 말고 오히려 더 하게 하도록 함으로써 문제행동을 소거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불면증 환자에게 잠을 자라고 하지 말고 절대로 잠을 자서는 안된다. 잠에 들더라도 새벽 3시 일어나서 반드시 화장실 청소를 하게 한다는 식이다. 토마스가 이 역설기법을 사용한 것은 아닐 것이다.


토마스는 우리의 감정의 문제를 윤리적 차원에서 포용하려는 것 같다. 감정을 느끼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불편해하는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네가 만일 선한 양심으로 산다면 기쁨을 자연스럽게 오게 된다고 한다. 과거 엄마의 목소리나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기보다 지금 네 내면의 '양심'에 집중해서 나의 양심이 괜찮다면 그 괜찮은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거나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요구할 필요가 없다. 내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 안에 있던 밖에 있던 '커다란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토마스의 눈으로 보면 도마는 문제적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조심스럽고 겸손한 사람이다. 사람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려고 거만을 떨거나 아첨하지 않는다. 감정에 두려움을 갖는 것을 염려하기보다 오히려 선을 행하고자 하는 도마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는 것. 오늘 토마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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