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원칙
1편에서 대화가 곧 '배려'라고 했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에는 대화를 '자비'라고 해보자.
대화에서 '자비'란 무엇인가?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되, 최대한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을 '자비의 원칙'이라고 하자(그런 거 없다).
다음 시간에는 '있는 그대로' 듣는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도구들을 살펴보고, 오늘은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와 어째서 배려를 넘어 '자비'까지 필요한 것인지 알아보자.
일단 첫째는, 가장 중요한 것인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나만큼' 똑똑하다.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만큼 창피한 일은 없다. 물론 누군가는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겠지만, 그것이 '나'일 확률은 개미오줌의 발톱 때만큼도 없다(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풀겠음).
그러니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일수록,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고 생각될수록, 그 사람 나름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라고, 어떤 특별한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자비를 베풀어 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상대방의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유를 들어본 다음에 비판을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듯 상대방을 '합리적 인간'으로 자비롭게 바라보는 것은 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내가 먼저 상대를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 이상, 상대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현실적으로, 자비를 베풀어야만 대화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모든 한국인은 운전을 엉망으로 한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이 주장을 반박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운전을 똑바로 하는 디로 같은 한국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이 정말 그것이었을까? 위 문장은 '대부분의 한국인은 운전을 엉망으로 한다'라고 읽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렇듯 실제 세상에서는 상대의 주장에 대해 반드시 '합리적 해석'이 필요하다. 이것을 간과하고 '모든 한국인'에 대해 반박하기 시작하면 전형적인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가 된다. 또한 허수아비 공격이 시작되면 상대방은 그 즉시 "너는 내 말을 오해했어"라고 반박할 것이기 때문에 공격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고, 대화가 성립조차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런 자비의 원칙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일수록 적용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독도는 일본땅'과 같은 주장들이 그렇다. 우리는 '터무니없다'라고 느껴지면 본능적으로 '주장 자체를 반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럴수록 자비의 원칙을 충실히 적용해서 왜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인지 차분하게 들어보고, 그 이유들을 하나씩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자비의 원칙'은 상대방 주장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세 번째는 제법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이유를 들어보자.
'자비'를 베푸는 것은 종교, 철학 등 모든 영역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장되는 일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에게만 사랑을 베풀고, 나에게 음식을 나누는 자에게만 음식을 나누고, 나에게 칭찬을 해주는 사람에게만 칭찬을 해준다면, '나'는 과연 사람인가 금수인가?
이 둘을 구분 짓는 잣대가 어디서 오는가? 나는 그것이 곧 윤리와 도덕이라고 생각한다(이 얘기도 나중에 자세히).
그러니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베풀고, 원수를 사랑하고, 죄인에게 관용을 베풀자. 그리고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갖자. 나와 같은 말만 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곳에서 아무리 신명 나게 떠들어도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있는 그대로' 듣기 위한 몇 가지 도구들을 소개하겠다.
ps. 오랜만에 각 잡고 글을 썼더니 습관처럼 반말이 나와서 미안하다. 컨셉으로 치고 끝까지 반말로 가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