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3

있는 그대로 듣기

by 디로

1편에서 대화에 배려(자비)가 필요하고, 2편에서는 자비의 원칙을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되 최대한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 이번엔 '있는 그대로'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고, 그에 도움이 되는 도구들을 살펴보자.


'있는 그대로' 들으라는 것은 상대방이 한 주장 외에 다른 주장을 넘겨짚지 말라는 것이다. 일종의 '유추해석 금지'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주장의 숨은 전제와 반대해석상 당연히 도출되는 결론을 부정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함부로 상대방의 주장을 왜곡하거나 곡해하지 말고, 인격을 폄하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한편 '합리적으로 해석하라'는 것은 지난 편에서 충분히 풀었으니 2편 참고.


그렇다면 이제 '있는 그대로' 듣기에 도움이 되는 도구들을 살펴보자.


양립가능

A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보자.

"나는 윤석열을 싫어한다"

이를 들은 B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A는 이재명을 좋아하겠군'


이것이 전형적인 '넘겨짚기'이다.

윤석열을 싫어한다는 주장으로 이재명을 좋아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는 없다. 위 두 문장은 '완전히' 독립적이다. 그러니까 상호 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완전히 '양립가능'하다. 두 문장 모두 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을 싫어하면서, 동시에 이재명을 싫어하는 것은 양립가능하다.


연습문제를 풀어보자.

어떤 사람이 '나는 일본음식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강제로 점거한 사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옳은 일이라고 할까? 아니면 그렇지 않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이다.

일본의 음식을 좋아한다는 사실과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의 주권을 강제로 침탈하는 것에 대한 견해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사람의 어떤 주장을 들었을 때, 그것과 양립가능한 수많은 주장들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어느 한 주장에 의해서는 그 주장 하나에 대한 의견만을 파악할 수 있다.


역, 이, 대우

역, 이, 대우에 대해 구구절절 다 설명할 수는 없고,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배웠을 테니 다들 머릿속 어딘가를 헤집어 보자.


'p는 q이다'라는 명제가 있을 때, 그 반대인 'q는 p이다'가 그 명제의 '역'이고, '~p는 ~q이다'가 '이'며, '~q는 ~p이다'가 '대우'가 된다.

증명과정은 다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p는 q이다'라는 명제가 참일 때 역과 이는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대우는 언제나 참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p는 q이다'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참이라고 주장한다면(실제로 참이라고 가정), 그 사람은 동시에 '~q는 ~p이다'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C가 '좋은 차는 비싸다'라고 말하면서 이것이 참이라고 주장한다면(실제로 참이라고 가정), C는 '비싸지 않으면 좋은 차가 아니다' 역시 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C의 주장에 '비싼 차는 좋은 차다(역)'라는 주장이나 '좋은 차가 아니면 비싸지 않다(이)'는 주장은 포함되어 있지도 않고, 우리는 이것이 참인지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어떤 명제를 참이라고 주장하면, 그 '역' 또는 '이' 또한 참이라고 주장한다고 오해하고는 한다. 그리고는 그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고, 마침내 주장하는 사람 자체를 비난하기에 이른다.

단순히 곡해하는 수준을 넘어 없는 사실을 만들어 공격하는 것이다.


역, 이, 대우의 관계를 명확히 알면 상대방이 어디까지 '참'이라고 주장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 이상의 넘겨짚기는 역시 금물이다.


앞으로 대화를 할 때는 위 두 가지 도구를 적절히 활용해서 상대방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듣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명심하자.

대화란 곧 '배려(자비)'다. 배려 없이는 시작될 수도 없고 성립할 수도 없다. 상대방의 주장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듣고, 가능한 '합리적으로 해석'하자.


다음 시간에는 주장과 근거에 대해 말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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