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3

염치없이 다시 글을 시작하며

by Dispectum

삶을 열심히 살아왔다.

시간이 빛으로 지나가고

해로 지고 달로 떠올랐다.


무질서하게 내린 눈의 모양을 한

이야기들을 주워서 뭉쳐보자면

아래의 몇 줄로 덩어리 진다.


연구원을 그만두었다.

서울에서 조금 더 먼 곳에서 삶을 시작했다.

무직의 기간 동안 국비과정으로 코딩을 배웠다.

같은 분야의 회사에 다른 직무로 재취직을 했다.


연구의 업을 완전히 그만두고

학위를 기반으로 한 선택에 어느 정도 종지부를 찍은 뒤에야

비로소 쓰고자 하는 글들을 쓸 용기가 생겼다.

나는 왜 연구원을 그만두었는지,

어떤 선택을 왜 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길게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시간들이 결코 나에게 의미가 없고 수치스럽기만 한 기억은 아니기 때문에



글에 시간을 의무로 부여하지 않으면 쉽게 쓸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같다.


AI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가전과 같은 존재가 돼 가면서

글을 써야 할 때, 생각해야 할 때, 어려워야 할 때를

거리낌 없이 위탁하기 시작했다.


참 마법과도 같은 일이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꿈꾸던 '내 옆의 멘토'를 모두가 갖게 되는 시대가

곧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라니.

하지만 수학 문제를 풀면서 조금이라도 막힐 때

바로 뒤에 달린 답안지에 망설임 없이 손을 뻗는 학생처럼

고민하지 않기로 선택해 버렸다.

일단 나부터가 그러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나도 글을 쓰는 걸 참 좋아했는데.'


나 자신은 왜 글을 쓰기로 결심했었는가?

열성적으로 쓰고 또 썼을 때의 동인은 무엇이었는지를

곰곰이 떠올렸다.

이제는 그럴 시간이 나에게는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시절을 멀리서 천천히 돌려볼 성질을 얻었기 때문에.


분노


활자를 남기고자 하는 이유가 저 감정 하나였던게 문제였다.

분노는 감정 중에 가장 불과 같은 게 아닐까 한다.

태울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태우고 난 뒤에는

그저 허무로 꺼진다.


이제는 글의 동인을 다양하게 찾아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염치없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글을 쓰는 건 즐거운 일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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