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없이 다시 글을 시작하며
삶을 열심히 살아왔다.
시간이 빛으로 지나가고
해로 지고 달로 떠올랐다.
무질서하게 내린 눈의 모양을 한
이야기들을 주워서 뭉쳐보자면
아래의 몇 줄로 덩어리 진다.
연구원을 그만두었다.
서울에서 조금 더 먼 곳에서 삶을 시작했다.
무직의 기간 동안 국비과정으로 코딩을 배웠다.
같은 분야의 회사에 다른 직무로 재취직을 했다.
연구의 업을 완전히 그만두고
학위를 기반으로 한 선택에 어느 정도 종지부를 찍은 뒤에야
비로소 쓰고자 하는 글들을 쓸 용기가 생겼다.
나는 왜 연구원을 그만두었는지,
어떤 선택을 왜 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길게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시간들이 결코 나에게 의미가 없고 수치스럽기만 한 기억은 아니기 때문에
글에 시간을 의무로 부여하지 않으면 쉽게 쓸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같다.
AI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가전과 같은 존재가 돼 가면서
글을 써야 할 때, 생각해야 할 때, 어려워야 할 때를
거리낌 없이 위탁하기 시작했다.
참 마법과도 같은 일이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꿈꾸던 '내 옆의 멘토'를 모두가 갖게 되는 시대가
곧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라니.
하지만 수학 문제를 풀면서 조금이라도 막힐 때
바로 뒤에 달린 답안지에 망설임 없이 손을 뻗는 학생처럼
고민하지 않기로 선택해 버렸다.
일단 나부터가 그러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나도 글을 쓰는 걸 참 좋아했는데.'
나 자신은 왜 글을 쓰기로 결심했었는가?
열성적으로 쓰고 또 썼을 때의 동인은 무엇이었는지를
곰곰이 떠올렸다.
이제는 그럴 시간이 나에게는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시절을 멀리서 천천히 돌려볼 성질을 얻었기 때문에.
분노
활자를 남기고자 하는 이유가 저 감정 하나였던게 문제였다.
분노는 감정 중에 가장 불과 같은 게 아닐까 한다.
태울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태우고 난 뒤에는
그저 허무로 꺼진다.
이제는 글의 동인을 다양하게 찾아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염치없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글을 쓰는 건 즐거운 일인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