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
완벽한 진공이었다.
소리도, 빛도,
심지어 노이즈조차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공백.
뇌로 이어지는 신경망 랜선을 누가 뽑아버린 것처럼,
세상과의 연결이 끊겼다.
내 망막이 까인 건가,
아니면 내 미래가 통째로 증발한 건가.
눈을 감았다 뜨는 행위는 무의미했다.
보이는 건 여전히 ‘없음’이었다.
‘젠장, 브릭(brick) 상태인가.’
예측할 가치조차 없는 버그 덩어리 인간이라 판단해서,
퓨처스톤이 스스로 커널 패닉을 일으킨 걸까.
내 존재라는 운영체제를 조용히 포맷해버린 듯한 기분 나쁜 침묵.
그때,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CRITICAL_ERROR: VISION_OUTPUT_FAILURE]
[FEEDBACK_LOOP_LOST: 100%]
[USER_MENTAL_SHOCK_RISK: LOW]
'위험도 낮음?
지금 내 실존적 불안감이 과열로 레드 라인을 찍고 있는데?'
혼잣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바로 그 순간, 시야 가장자리에서 강력한 스파크가 튀었다.
0.2초 남짓, 깨진 데이터 조각 같은 영상이 뇌리에 박혔다.
픽셀이 뭉개지고 스크린 티어링이 일어난 영상 속엔,
분명 내가 있었다.
지독한 다크서클에 퀭한 눈.
마치 수십 년은 늙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 ‘미래의 나’는 찢어지는 노이즈와 함께 딱 한 마디를 뱉었다.
“내일은 없을지도… 모르잖아.”
데이터 패킷이 전송되다 만 것처럼,
영상은 거기서 끊겼다.
…뭐? 그걸 지금 경고라고 보낸 건가?
농담이라기엔 그 목소리에 담긴 피로와 절망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불두화.
대체 어떤 예언을 품은 꽃이기에,
그 끝이 ‘내일 없는 삶’으로 귀결되는 건데.
잠깐. 아니, 잠깐만.
내일이 없으면…
이번 주 알바비는 어떻게 되는 거지?
방금 전까지 우주적 고뇌에 빠졌던 뇌가
순식간에 현실로 강제 귀환했다.
미래는 없어도 되지만, 월급은 있어야만 한다.
딸랑—
그때 편의점 문이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열리며,
강호가 특유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왔다.
“인생은 미완성~! 미완도 미완!성”
아, 저 놈의 BGM.
10년 넘게 들어온 저 멜로디는
이제 파블로프의 개처럼 내 신경을 자극한다.
“야, 그 구시대적 멜로디 좀 업데이트 안 하냐?”
“크흐흐. 네가 그렇게 정색하며 받아치니까 더 하고 싶잖아. 인생은 미완! 성~!”
오늘은 무시하려고 했는데,
또 실패했다.
‘미완성’이라는 단어에
내 자아가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만다.
강호는 익숙하게 냉장고에서 맥주 4캔 묶음을 꺼내 계산대로 가져왔다.
내가 바코드를 찍는 순간,
강호의 손목에 채워진 퓨처스톤에서 희미한 빛이 점멸했다.
“엉? 뭐야? 이거 4캔에 5천 비트 할인 아니었어?”
“어제 23시 59분부로 종료된 행사입니다, 고객님. 그리고 반품은 불가합니다.”
“아, 젠장! 낚였네.”
강호의 퓨처스톤 단말기에 [12,000 BIT 출금 완료]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퓨처스톤 시스템의 불문율.
다른 모든 정보는 신경망으로 직송되어 감각으로 느끼게 해주지만,
오직 돈과 관련된 정보만큼은 반드시 시각 데이터로 출력된다.
돈이란, 눈으로 직접 봐야만 현실감이 생긴다는
고루한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에이, 퉤. 기왕 이렇게 된 거 마셔야지. 대신 인생이 미완! 성인 네가 오다리 정도는 쏠 수 있잖아?”
“에휴, 정규직 갑질 보소. 알겠습니다요.”
나는 3천 비트짜리 오다리를 내 퓨쳐스톤으로 결제해 던져주었다.
철컥—
어느새 밤 9시.
편의점의 육중한 셔터가 내려오며 무인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소리가 났다.
나의 퇴근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다.
강호와 나는 편의점 앞 하얀 파라솔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치익—
강호가 먼저 시원하게 맥주 캔을 땄다.
나도 망설임 없이 캔을 따,
차가운 알루미늄의 감촉을 느끼며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
미래가 404 에러를 띄울지언정,
맥주의 서늘함이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이 순간만큼은 확실했다.
이건 오류 없는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