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의 체셔

by 냥이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가르쳐 줄래?”


2017년도 즈음이었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퇴장하고 사회에 나온 지 몇 년째. 여전히 이것저것 해보다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길 몇 차례… 운이 좋아 뭣도 모르고 경험해 본 적 없는 좋은 조건으로, 좋은 회사에 낙하산으로 들어갔다. 그 직장에 입사했을 때 난 마침내 내가 있어야 할 곳, 내가 갈 길을 찾은 것만 같았다. 이미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방황하고, 허비했고, 손해 봤다. 누군가 사람의 인생에는 몇 번의 큰 기회가 온다고 했다. 지인 소개로 나에게 찾아온 이 직장은 이미 남들보다 한참을 뒤쳐진 내 인생을 단번에 정상궤도로 진입시켜 줄 수 있는 말 그대로 마법 같은 유일한 기회였다. 꿈이니, 적성이니, 거창한 이상론을 들먹이며 거절하기에는 내게 너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 기회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페인트 도장 공사라는 분야에서 꽤 인정받는 업체. 고용의 안정성과 내 기준에서 볼 때 짭짤했던 페이. 업무가 힘들다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딨어? 내가 맞춰나가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그곳에서 공사, 안전관리자로 일하며 난 적잖이 일을 못했고, 또 적잖이 고통받았다. 그렇게 1년 하고 몇 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한 일상. 결과적으로 애는 써봤지만 자연스럽지 못했고, 시간이 적응을 담보해 주지도 않았다. 나라는 존재는 착실하게 타인의 욕과 비난을 담는 그릇이 되고 있었다. 이게 바로 현실이 어떤 줄도 모르고 현실을 택한 내게 내려진 심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꿈보다 현실을 쉬운 선택이라고 했나?

그때, 내 마음의 소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 여기서 앞으로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사실 난 정말 자신 없어.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명목으로 제 몫도 하나 못하는 곳에서 욕받이가 되고 있으면서 겉으로 주변에 잘 보이려고 사는 거짓 삶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살 자신이 없어… 퇴사한다고 하면 가족들은 실망할 거고, 다시 불안정한 생활로 돌아가게 될 거야. 그렇게 내가 택한 현실은 되려 비현실적인 고통을 내게 안겨주고 있었다. 어두운 밤, 혼자 걷는 퇴근길. 나만 바보가 되고 있는 것 같은 이 미친 이상한 나라에서 누구라도 좋으니 나갈 방법을 알려 달라고 대답 없는 허공에 탈출구를 묻는다.


저 앞에 고양이가 지나간다. 지난번 봤던 고양이 같아 몇 번 불러봐도 뒤도 안 보고 가는 녀석을 보니 저 놈도 지금 가야 할 곳, 챙겨야 할 스케줄 같은… 생활의 리듬이 있구나 싶었다. 물론 귀찮은 인간에게 가던 길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걸 수도 있지만. 문득 고양이를 보니 안정의 개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안정… 하면 보통 자유의 반대말 같은 인식이 많은데, 온전히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다. 자유를 얻는 대신 여기저기 떠돌며 불안이란 밥을 먹느냐, 굶주릴 필요 없지만 어딘가에 갇혀 부자유라는 밥을 먹느냐, 누군가는 생활을 위해 굶을 걱정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할 수 있고, 누군가는 갇혀 지내지 않고 자유를 얻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가치관에 따라 안정이란 것의 의미는 엄청 상대적인 것이기에 정답은 없지만, 굳이 누군가가 그 망할 놈의 세상이 인정하는 안정된 직장에서 세상 누구보다 불안정한 마음 상태로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는 내게 안정이란 무엇인지 묻는다면 대답은 이렇다. 목표로써 쟁취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 가치관의 중심이 자유에 있는지, 생활에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무언가를 추구를 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 안정의 본질은 어쩌면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방금 본 그 고양이도 길고양이라고 무조건 고달플까? 아니면 자유를 느낄까? 고양이 본인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진다.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달렸지”


고양이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면 한 대 때리고 싶었을 것 같다. 내가 갈 길은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달려있다니. 너무 당연하고 무책임한 말 아닌가? 남일이라고 쉽게 얘기하긴… 그런데 내가 고양이에게 책임을 논할 정도로 책임감 있게 살았는가를 따지면 또 할 말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다니던 직장을 대책 없이 관두려는 무책임 못지않게 무책임한 짓을 한 적이 이미 있다. 내 꿈을 배신하고 포기한 것. 2015, 대학교 졸업 직후, 언제나 늘 하고 싶었던 대로 살아왔던 주제에, 진짜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며 시각디자인을 6개월 정도 국비지원으로 배운 적이 있다. 목표는 웹디자이너. 성적 맞춰서 억지로 고른 학과의 전공을 공부했던 대학교 생활과는 다르게 내가 선택한 길, 내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공부는 나에게 신선한 열정을 부여했다. 학원에서 포토샵, 일러스트 등 디자인 프로그램 자격증을 따며 웹디자인 포트폴리오라는 걸 만들어 본 것은 큰 경험이자 소득이었지만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멋지게, 즐겁게 교육과정 수료를 완료한 후. 편안히 배우면서 즐겼던 시간과 취업해 직업적으로 실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의 온도차는 달랐다.


나와 내 관심사가 아닌 기업, 회사를 위한 창작을 해야 했고, 크리에이티브 한 활동을 하는데 걸리는 많은 제약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생각했던 것만큼의 재능이 내게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의 퇴사와 이후에 난 이걸 좋아하지만, 밥벌이까진 못하겠다… 라는 판단을 하여 결국 다시 방황의 길로 들어섰다. 경쟁원리에서 떨어져서 보는 디자인들, 풍경들은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꿈에 대한 배신이 용서받을 수 없는 비겁한 행동일까? 글쎄, 난 아니라고 본다.


배신이라니, 가당치도 않지. 애초에 언제부터 꿈이 내 편을 들어줬다고. 꿈에 실패하고, 좌절하고, 일상이 지옥이 되더라도 인간의 삶은 계속되며 우린 이 세상에서 긴 시간을 살아나가야 한다. 한 때는 내 모든 것을 쏟았던 것이 지금에 와서 우습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일은 인간의 삶에서 흔하다면 흔한 일이다. 관계도, 꿈도, 심지어는 사랑까지도… 예상 밖의 일들 투성이인 세상에서 그때마다 선택과 상실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과 죄책감을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주저하게 되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고 한다면 난 기꺼이 고양이가 되어 그런 말을 하는 인간의 주둥이를 할퀼 것이다.


조금 더 자유로워지면 어떨까? 지금 내게는 "사람의 꿈은 다양하며, 꿈을 이루는 방식 또한 다양하다"라는 일종의 직업관이 정립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고 해서 꼭 무엇이 될 필요가 있나? 기타를 치고 싶으면 기타를 구해서 기타를 치면 되고,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르면 되고, 글을 쓰고 싶으면 워드 파일의 창을 열어 글을 쓰면 되는 거지. 현실이고 꿈이고 다 뭐야. 그저 하고 싶으면 죄다 그냥, “하면” 되는 것들인데. 무엇이 두렵고, 마음에 걸려 못했던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애초에 현실과 꿈, 굳이 무엇 하나를 선택해 충성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삶은 나라는 인간에게 안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그 모든 것의 기대를 깨버리고 순간순간 예상 밖의 일들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는 것. 그게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내일 말하자. 퇴사하겠다고. 여기 아닌 어딘가로 갈 수만 있다면. 그게 내 길인 거지 뭐."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와 다시 현실로 돌아온 순간. 어느새 그 고양이는 저만치 멀리 걷고 있었다. 그때, 그 고양이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었던 가로등의 불빛이 아름다운 보라색으로 보였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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