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를 구해줬던 어떤 날들에 대한 이야기
모두가 평온하고 즐거워야 할 인생 한번 뿐인 대학교 졸업식이 비리 논란이 있는 총장과 그에 맞서는 학생회의 싸움으로 인해 개판이 되면서 끝났다. 나를 축하해주러 함께 온 부모님에게 죄송했다. 더 공부를 잘해서 더 나은 대학에 갔었다면 다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진로에 대해서 제대로 충실히 살지 않았던 삶에 대한 대가인가. 묘한 죄책감이 내 마음에 싹을 틔웠다. 그 직후, 사회에 공식적인 백수로 데뷔했고, 특별히 전공을 살릴 생각도 없었던 난 이번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배워서 그것으로 직업을 삼으면 삶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국비지원 직업학원에 들어가 웹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다.
문제는 내가 시작부터 미친 듯이 열심히 했다는 것. 그 국비지원 학원만이 아니라 따로 사설학원도 등록하여 공부했고, 집에 와서는 웹디자인 관련 책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짧지만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번 아웃’ 기간이었다. 막 시작했을 뿐이고, 기본을 배우고 있는 과정에 있는데 그렇게까지 노력을 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웹디자인은 예체능 관련 업종이고, 진작에 나의 많은 비용과 시간이 투자되었어야 했는데, 대학 졸업까지 엉뚱한 것 전공하고, 남들 다하는 자격증, 어학공부 따라 하면서 내 진로에 관해 무방비 상태로 보내다 이제야 제 길 찾겠다고 여정에 오른 나의 뒤쳐짐에 관한 조급함 때문이었다.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부모님은 내가 웹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준비한 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것은 내게 또 다른 죄책감과 무거운 책임감을 부여했다.
기본적인 것을 배우고 여유가 있던 입문 초기를 지나서 진화 심화 단계를 배우기 시작하자. 애써 가려두고, 눌러두고 있던 문제들이 지뢰가 터지듯이 발발했다. 나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대학교까지 제대로 된 코스를 밟아온… 진짜 이걸 자신의 "꿈"이라 생각하며 꾸준한 길을 걸어온 이들과의 경쟁이 두려워졌다. 해낼 수 있을까? 지금 하고 있는 노력으로도 부족하면 어쩌지? 내 불안감이 나를 좀먹기 시작하고, 심지어 함께 공부하며 배우는 사람들까지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경쟁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의지할 곳이 아무 데도 없고, 날이 갈수록 감정상태가 예민해지기만 하다가. 일상생활에서의 감정조절까지 어려워져 결국에는 진행 중인 교육과정을 잠시 멈추고, 자의로 입원을 결정하게 되었다.
정신과 병동이란 곳에 대해 생각해보면 사람을 상처 입히는 진짜로 미쳐있는 누군가, 무엇인가는 병원밖에 있는데 그 것으로부터 상처 입은 사람들이 주로 오게 되는 공간인 것 같다. 모든 종류의 병동이 기본적으로 그렇겠지만 정신과 병동의 생활은 좀 답답하다. 폐쇄병동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외부로의 출입이 제한되고 핸드폰 등 기본적으로 전자통신기기의 반입도 불가능하며,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념무상으로 병동 복도를 걷기, 책 읽기(도서는 반입이 가능), 병동 스케줄에 의해 진행되는 검사 및 환자들의 회복을 위해 병동에 초빙된 강사, 치료사와 함께하며 진행하는 심리치료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기, 병동에 설치된 TV(이상하게 옛날 추억의 MTV 채널 같은 방송이 주로 나온다. )를 시청하기 정도다. 보통 그 외의 시간은 같이 입원해 있는 환자들끼리 모여 보드게임을 한다거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로 시간을 때우는 방법이다. 거기서 나는 2인실을 썼는데, 거기서 만난 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나는 옆자리에 있던 형의 친절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병원에서 처음 봤고, 서로 무엇 때문에 힘들었고, 무엇 때문에 오게 되었는지 하나도 모르는 상황인데, 그 형은 선뜻 먼저 나에게 자신의 속 이야기를 열심히 털어놨다. 자신이 경호원이었다고 소개한 그 형은 어떤 스트레스 때문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스트레스의 내용은 미안하게도 잘 기억이 안 난다. ) 중요한 건 그 형은 몸이 꽤 좋았는데, 자신의 근육과 운동 기술을 내게 보여주고, 알려주며 이것은 어떤 전문기관에 소속되어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연구하고, 노력을 해서 만들어진 몸이라며 어필을 하는 것이었다. (안 물어봤는데 열심히 알려줘서 경청했다. ) 아무튼 되게 단순했던 이야기지만 그 형이 몸을 만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나는 병원에 입원하게 된 내 상황을 돌아보게 되면서 묘한 위로를 느꼈다. 처음 본 그 형은 내가 왜 여기 왔는지 모를 텐데, 이상하게 날 위해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어쨌든 말이 좀 많았던 그 형이 해줬던 이야기들은 묘하게 어떤 검사나 치료보다도 내게 와 닿았다. 그리고 입원 생활을 하게 되면서 어느새 나도 형이 나에게 해줬던 그런 친절을 병동을 같이 쓰는 다른 아픈 이들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나누고 있었다. 뭐랄까… 그 형을 필두로 환자들이 환자인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따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지루했던 입원생활이 조금은 즐거워졌다. 덕분에 입원 생활이 끝날 때 즈음에는 상황이 달라지거나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다시 나가면 무엇을 공부하든 너무 무겁지 않게, 즐겁게 해보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영화 “조커”에서 주인공 아서 플렉이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는 것이 이로움에도 죽이지 않았던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그에게 친절했던 동료 난쟁이 광대였다. 아서 플렉은 이미 우리가 아는 악당, 조커에 가까워져 있었지만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인간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그 장면에서 그가 난쟁이를 살려 보내주며 했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너만은 나에게 유일하게 친절했어. 잘 가.” 어떤 사람을 광인이 되느냐 마느냐의 경계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그 사람을 향한 작은 친절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