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알리바이

by 냥이

현대 한국사회에서 “노는 것은 범죄다.” 라는 법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는 사람의 대부분은 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다. 오죽하면 “놀면 뭐해?”라는 제목의 노래까지 발매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노는 것이란 경제활동 공백기, 정확히는 수입을 만들어내는 시기가 아닌 공백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해볼까? 이건 백수기간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온 이후. 너무도 당연하게 사람들은 사람 자체가 되기보다 사회인이 되기를 외부로부터 기대받고, 내부로부터 갈망한다. 사람의 본업은 사람인데… 각자의 목표, 직업적 자아실현, 혹은 생활과 생존을 위해 그 본업을 잠시 양보하거나 미뤄두고 사회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도통 멈출 줄을 모르며,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혹자는 백수가 되자마자 금세 감당을 못하겠다며 몇몇 관계를 단절하고, 다음 직장, 또는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도약을 위한 숨 고르기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공백기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전부 미래에 저당 잡혀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의도하지 않아도 모두가 윈윈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이론을 펼친 바 있다. 글쎄…그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위험에서 잡아준다고 하기보다는 되려 우리를 위험으로 떠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 내 생각엔 백수도 불안하고 위험하긴 마찬가지지만 평생 한 번도 멈출 줄을 모르는 사람 이야말로 더 불안해 보이고, 위험해 보인다. 살다 보면 마주하게 될 이유와 목적이 없는 상황이 올 때. 그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본인이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한 끝없는 고민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것 하나는 이 세계가 “쉼을 위한 쉼”에 대해 각박한 세계라는 것이다. 나 또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 중 하나로서 몇 번의 백수기간을 거쳤다. 노는 것을 범죄시 하는 분위기의 사회에서 그럼에도 놀고 싶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알리바이다. 당신을 위한 범죄 컨설턴트로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은 다행히 꽤나 불성실한 삶을 살아온 편인데, 오늘은 특별히 쉼을 위한 쉼. 순수한 시간낭비를 소망하는 그대들에게 몇 가지 알리바이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Case 1. 자기 계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방법으로 추천하지 않는다. 정해진 틀이 없고, 무언가를 배우긴 해야 할 텐데 적절한 명분이 필요하며 남들이 볼 때 쓸모가 있는 종류의 것이어야 하는 등등, 잘못했다가는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끝이 나며 시간낭비라는 구설수에 휘말릴 수 있다. 뭐, 사실 시간낭비가 우리의 계획이긴 하지만 타인에게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게 알리바이의 미학 아니겠나? 그럼에도 몇몇 성공사례들이 있긴 있다. 영리하거나, 유능한 사람들은 자신이 알리바이로 사용할 자기 계발에 대한 명분을 주변에 인지시키고, 자신에게 쉬운 목표를 설정.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쉽게 달성한 뒤, 나머지 시간을 노는데 활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Case2. 여행

기간은 자신의 예산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활용할 수 있다. 대체로 그 기간이 길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놀 것들을 챙겨서 가거나, 놀 수 있는 것들, 원하는 것들을 구할 수 있는 지역을 잘 선점하면 집에서 노는 것과 비슷한 환경에서 방해 없이 빈둥댈 수 있다. 아마도 짧은 낭만이 있다면 이런 것이겠지. 여행의 준비과정을 길게 잡아서 그 시간을 포함해 즐기며 가는 것도 괜찮은 전략.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자칫하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품이 많이 들어가는 방법이니, 여행 사실을 알릴 때는 액티브한 여행 말고, 현지인처럼 자유롭고 편안한 콘셉트의 여행을 원한다는 어필을 해둘 것. 여행 이후 사진 같은 증거물을 요구할 경우엔 본인이 본 풍경과 추억들은 눈과 마음에 담아두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감성적인 핑계를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Case3. 공무원 시험 준비

알리바이로써 시험기간이라는 정해진 기간 동안 공백기를 길게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다. “준비했으나, 실패했다” 에만 주목하지 어떻게 불합격이 되었는지, 과정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 기업의 결과주의적 사고의 맹점을 이용한 알리바이. 쉼을 위한 쉼이 목적이라면, 인강 정도에만 투자할 것. 집에서 하기보다는 근방의 도서관을 추천, 공부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하므로 공간적인 제약이 따르고, 정숙해야 하는 도서관 특성상 편한 자세, 편한 상태로 있기가 어려우므로 기간을 길게 잡을 수 있는 장점 대신 자유도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이 정적인 라이프를 좋아하며 독서광이라면 제법 맞는 방법일 수도 있다.


Case.4 미세 골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내게 일어난 가장 완벽한 알리바이. 처음 다칠 때 굉장히 고통스러웠고, 그 후에는 깁스로 인해 행동반경에 제약이 걸렸지만, 애초에 그냥 놀고 싶다면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기간은 완치될 때까지. 구직 자체로부터 해방된다. 깁스에다 목발 하고 면접을 보러 간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며, 면접이 성립되지 않으면, 이력서 지원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불편을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내 삶에서 가장 고민과 죄책감이 없었던 자연발생적 알리바이다. 적당히, 제대로 다쳐야 하기 때문에 실행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운에 맡겨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부디 일부러 시도는 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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