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해리의 고학년

by 냥이

대학교 3학년. 미래는 준비된 자의 것이라는 말이 있다면, 그때의 미래는 내 것이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가장 바쁠 시기,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시기라는 것에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남들 다하는 자격증, 토익 등을 하며 경쟁력이라고 믿어왔던 스펙을 준비하고, 자소서, 이력서를 만들어가며 어설프게 취업준비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해리포터 시리즈 영화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무려 6번째 영화라고 한다. 해리포터가 벌써 6번째 영화라… 그 옛날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끝나고, 당시 소설 원작 판타지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인기 시리즈였지만 난 이상하게 끌리지 않았다. 출생 스토리 하나만 기가 막힌 안경잡이 주인공이 분에 넘치는 끝내 주는 장비들을 갖게 되고, 주변 상황에 휘둘리며, 멘토와 조력자, 친구들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는 성장물이라… 어쩐지 영화 반지의 제왕의 반지 운반자. 프로도의 판박이다. 당시 쿨하고 멋지고 허세 가득한 완성형 주인공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에 빠져있던 나로서는 영화 캐릭터로서 그 프로도도 참 별로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인지 그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해리에게도 별로 안 끌렸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시리즈의 대략적인 인물이나, 스토리를 알고 있는 이유는 청소년기. 중고등학교 때 중간, 기말고사 등이 끝나면 방학을 맞이하기 직전, 교실에서 수업을 하기도 애매한 기간이라 선생님들의 허락으로 매 교시. 친구들이 가져온 VHS 비디오테이프를 교실에 있는 커다란 TV로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팬인 친구들이 꼭 있어서 그들이 가져온 비디오로 그나마 띄엄띄엄 스토리를 접한 덕분일 것이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그 영화 혼혈왕자는 뭔가 달랐다. 성인 판타지 같은 분위기를 주는 이 영화는 깊고 어두운 느낌으로 시작해서 깊고 어둡게 마무리가 되었다. 줄거리는 극 중 최종 보스인 볼드모트라는 악역의 기원을 밝히고, 그와의 최종 결전을 준비하는 내용으로, 해리의 주변 상황은 전에 없이 악화되고 있는데, 급기야 가장 강력한 조력자이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매번 어떻게든 해줄 것 같았던 덤블도어 교수가 결말부에 사망한다. 나는 원작도 잘 모르고 영화만으로 스토리를 캐치해 온 거라서, 꽤나 충격적인 마무리였다. 그래, 해리는 이제 어떡하지? 싶을 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이내 해리는 해리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진로와 취업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증폭되던 시기. 나는 혼혈왕자 영화에 나온 해리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해리의 호그와트 같이 꿈과 희망과 명성이 가득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돌아올 수 있는 곳이었던, 캠퍼스라는 울타리는 조금씩 해체되고 있었고 시간은 나를 추격해오고 있었다.


그래… 그랬나 보다. 당시의 나에게는 나의 미래가, 취직이 볼드모트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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