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담임은 가끔씩 요상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가령 이런 식이었다.
담임의 설정으로 그때의 교실은 침몰선이 되었고 우린 위기에 처한 승객이 되었다. 그리고 탈출 보트의 자리 수는 정해져 있었다. 배가 침몰을 시작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정도… 우리는 한 사람 씩 앞에 나와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심판대 앞에 세워야 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보았듯이, 바다에서의 익사는 차갑고 고통스러운 죽음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우린 각자 당시 스스로가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사람들을 깊이 감복시켜 투표를 받아야 했다. 담임은 절차상 진행을 서포트할 뿐. 결과에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았다.
교복도 안 입은 겨우 초등학생 6학년에게 이런 극단적 설정의 역할극이라니. 담임도 진짜 악취미 구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면 이건 겨우 13세의 나이에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였다.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우리 6학년 8반은 진지하게 임했다. 물론 처음엔 어색하고 무슨 짓인가 싶었으나 막상 진지하게 임하니 차례를 거듭할수록 생존을 향한 긴장감도 생기고 자아성찰 하는 아이, 애교 부리는 아이, 긍정적인 아이, 부정적인 아이, 거래하려는 아이, 눈물짓는 아이, 포기하는 아이 등등… 의외로 초등학생 내면에 숨어있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어떤 아이였고 나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었나를 떠올려본다. 난 뭐였더라… 잠깐만, 아, 생각났다! 알고 보니 나는 꿈을 입에 담는 아이였다. 만화책을 좋아했고, 틈 만나면 만화를 그렸고 그리하여 만화 그리기부에서 활동했으며 더하여 교내 뉴스를 전하는 신문을 스케치북처럼 활용했다. 그렇게 그린 습작들을 이따금 남에게 보여줄 때면 “야 얘 재밌게 잘 그린다!”라는, 부끄럽지만 기분 좋은 칭찬을 듣기도 했다.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것은 내 확고한 꿈이었다. 루피가 원피스를 찾겠다고 하듯, 나루토가 호카게가 되겠다고 하듯, 손오공이 드래곤볼을 모으겠다고 하듯, 나는 만화가가 되겠다고 하는 게 마치 만화 주인공의 숙명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이 망할 침몰선에서 살아나가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정진할 것이고 반드시 내 삶의 가치를 증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난 그 침몰선에서 당당하게 생존티켓을 받아냈다. 그랬었다. 내 꿈과 비전은 당시 내가 실내화를 신고 다니던 그 교내 복도 바닥만큼 단단하고 견고했으며 모든 게 완벽했던 순간이었다. 마치 하얀 스케치북을 가득 메운 내 그림처럼. 하지만 시간이 가고, 세상은 변하고 내 꿈은 흐릿해지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하면서 흐르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결국 최종적으로 내가 변하고 말았다.
내 마음과 머릿속의 생각대로 삶을 그릴 줄 알았건만 내가 사는 현실의 철저한 범위 안에서 삶은 쓰여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 날 내가 교실에 흩뿌렸던 꿈에 대한 이야기들은 아름다운 거짓말이 되었다. 마치 만화 속 이야기처럼. 그때 난 무슨 앵무새 마냥 감당하지도, 지켜내지도 못할 꿈에 대해 얼마나 장황한 말들을 늘어놓았던 걸까? 그 말의 의미와 따라올 책임을 이해는 하고 있었을까? 가끔 그 침몰선에 남게 된 아이가 지금의 나에게 질문하는 상상을 한다. 네가 도착한 미래는 멋지냐고. 세상 모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자신의 손 끝에서 나오게 될 줄만 알았던. 반짝이는 눈으로 꿈을 말하던 그 아이는 커서 어떤 어른이 되었냐고. 그러니까… 그때 그 배 안에서 모두에게 약속했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냐고. 무거워진 입을 조심스레 연다. 지금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