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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이 Apr 19. 2021

장난감 졸업식

나의 어린시절을 되돌아보면 늘 장난감과 함께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학교를 갔다 오면 매일 밤 TV에서는 그 당시 슈퍼로봇, 용자물의 본토이자, 애니메이션의 메카였던 일본에서 수입된 멋있는 로봇 애니메이션들을 방영해줬고, 백화점까지 갈 필요도 없이 동네 문방구, 슈퍼마켓에만 가도 내가 TV로 즐겨봤던 로봇 애니메이션들에 출연한 로봇들의 조립식 상품들이 몇일 모은 용돈이나, 세벳돈의 일부를 투자해 능히 살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난 그렇게 하나, 둘 장난감들을 모아왔고, 집에 커다란 장난감 바구니에 보관해야 될 정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개인용 컴퓨터인 PC가 거의 모든 사람들의 집에 보급되면서 PC게임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신문물을 접한 소년들에게 PC게임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놀이의 과도기에 돌입한 셈인데, 여기서 뭔가 부끄러운 사실을 꺼내자면,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단짝친구와 초등학교 6학년까지 장난감으로 놀기를 즐겨했었다. 그 나이에 어울리는 놀이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당시 소년들에게 유행하는 놀이인 PC게임을 안 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항상 만남의 끝에서 우리는 약속한 듯이, 마치 우리가 즐겼던 장난감 놀이 문화를 수호해야 한다는 사명을 지키기라도 한다는 듯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과거를 잊은 소년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어린 나에게 꽤 오랜 시간 즐거움을 주었던 친구 같은 장난감을 영원히 등지고 싶지는 않았던 거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달리 장난감 놀이는 점차 재미를 잃어 가기 시작했고, PC게임을 즐기는 시간은 점차 길어졌다. 장난감 놀이가 지루해지는 그 때마다, 우린 기지를 발휘해 영웅과 악당이라는 단순한 플롯에서 벗어나 선생과 학생, 경찰과 범죄자 등의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면서 추억이 깃든 놀이의 유통기한을 조금씩 늘려갔지만... 그것도 임기응변일 뿐, 결국은 영원한 것은 없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당시 나보다 조금 성숙했던 그 친구였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거실에서 PC게임으로 즐겁게 놀다가 만남의 마무리에 장난감 놀이를 하러 친구의 방으로 들어가는데, 친구의 입에서 오늘이 우리가 이걸 하는 마지막 날이다. 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순간의 정적. 나는 "왜?" 라는 질문을 하지도, 굳이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약간의 침묵이 지난 후, 나는 조용히 알았다고 대답하며 장난감을 갖고 착석했다. 우리 모두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있었다. 우린 아직 어렸지만 내심 언젠가는 해야할 작별이란게 이 세상에 존재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성장하기 위해서, 나아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했던 마지막 장난감 놀이의 테마는 졸업이 되었다. 자세한 놀이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놀이를 끝내는 마지막 대단원에서 우리는 우리의 어린 시절을 빛내 줬던 장난감들을 하나 하나 조명하며 서로에게 인사를 시켰다. 그 당시에 유행했던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봉숭아 학당을 오마쥬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어느 휴일의 해질녘, 친구의 방안에서 너무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장난감 졸업식이 끝이 났고, 그 후 우리는 다시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았다.



토이스토리3에서 대학생이 된 앤디와 장난감 우디의 작별을 보며 울었던 건 그로부터 먼 훗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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