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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손

<저만치 혼자서> 김훈 작가의 그 문장

“이보시오, 손으로 잡으려 했다니까 자살이 아니지 않소. 손으로 말이오.”

- 손, 김훈 <<저만치 혼자서>> 중




#1.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손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당탕탕' 우영우와 vs '권모술수' 권민우의 경쟁을 보여주는 회차에서 우영우는 참과 거짓을 가리는 방법을 배운다. 전직 형사가 알려준 방법에 의하면, 사람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리, 그다음이 손이라고 한다. 머리에서 멀어질수록 완벽하게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인데 얼굴 표정은 꾸며내도 다리가 떨리고 손바닥이 축축한 건 조절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앉아 있다든가, 아니면 손으로 허벅지를 쓰다듬는다든가' 하는 몸동작은  거짓말의 신호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그렇다. 말로는 아닌 척하지만 긴장하면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는 버릇이 있다. 거꾸로, 주먹 쥔 손을 보며 '아, 내가 긴장하고 있구나'를 인식할 때도 있으니 생각보다 몸의 언어는 거짓말을 하기 힘든 듯싶다. 머리에서 멀어질수록 통제가 어렵다는 손. 손의 표정은 은근 다양하다. 드라마 속에 클리셰 같은 장면들이 떠오른다. 안절부절못하며 거짓말하는 손, 주먹 쥐며 결심하는 손, 부르르 떨면서 분노하는 손, 누군가를 도닥이는 따뜻한 손. 알게 모르게 다양한 감정을 '손'에 담고 있었던 거다.  




#2. 저만치,  손


여자는 오른팔로 대원의 목을 끌어안고 왼손으로 대원의 겨드랑 밑을 움켜쥐고 있었다... 신참 대원이 여자의 움켜쥔 손을 폈다. 손금에 물이 고여 있었고 손가락은 무언가를 자꾸만 잡으려고 버둥거렸다.

  

“이보시오, 손으로 잡으려 했다니까 자살이 아니지 않소. 손으로 말이오.”


김훈 작가의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 중 '손'이라는 단편에 나오는 문장. 자살하려고 물에 뛰어든 딸을 발견한 소방관에게 딸의 손이 뭔가 움켜쥐고 있었다는 얘길 전해 듣고 아버지는 울부짖는다. 딸은 죽으려고 한 게 아니라 살려고 한 거라고. 그러니까 자살이 아니라고!!


처음 읽을 땐  '사건'에만 초점을 맞춰 가해자 아들과 엄마, 그리고 경찰서에서 마주친 피해자 딸과 그녀의 아버지인 목수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아니면 범죄자가 된 아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엄마의 복잡한 심정인가? 그만큼 소설은 '사건'과 얽힌 가해자의 부모와 피해자 부모의 심정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제목이 '손'일까? 이 궁금증은 다 읽고서도 풀리지 않았다.  


소설책 뒷자리에 '군말'이란 제목으로 소설 쓸 때 작가의 마음을 쓴 글(좀처럼 없던 일이라 좀 신기하다!)이 있다. 거기에 단편 '손'은 오영환 소방사의 책을 읽고 사람을 구조할 때 손의 느낌을 듣고서 시작한 소설이란다. 하지만 아무리 써도 세 단어(간절한, 강력한, 따뜻한)를 이겨낼 도리가 없다며, 글은 삶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이 '군말'덕분에 왜 제목이 '손'인지 궁금증도 풀렸고 작가의 고민을 엿보면서  대가의 인간적인 면모도 느낄 수 있었다. 간절한, 강력한, 따스한 그 세 단어를 떠올리면서.       


오영환 소방사의 글을 읽고 나서 나는 그에게 전화를 해서 그때의 손의 느낌을
 더 자세히, 더 육감적으로 말해보라고 다그쳤는데
그는 간절한, 강력한 따스한, 세 마디를 반복할 뿐이었다.




# 3. 밤 보관법을 찾다가


나도 '손' 하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 지난가을  방송 아이템은 계절에 맞게 '밤'이었다. 촬영지가 마땅치 않아 고심하던 중 촬영감독님의 고향집에서 밤 농사를 짓는다는 걸 알고 갑자기 촬영지가 결정되었다. '야생이다 감독'이란 별명처럼 바다에 가든, 산에 가든 거기에 사는 사람처럼 야생에 익숙한 사람인 건 알았지만, 주말마다 부모님 농사일을 돕는 줄은 몰랐다. 그렇게 맘껏 '밤'을 촬영하고, 촬영이 끝난 후에는 모자란 일손을 도와 '밤 따기'까지 1석 2조의 현장이었음을 알려왔다. 필요하면 구입하라는 피디의 연락을 받고 신청한 밤은 무려 8kg. 밤 8kg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주문했는데 양이 어마어마했다. 당일 택배로 온 밤을 그냥 두면 썩겠다 싶어 한밤중에 밤을 씻고 정리했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한 번에 먹을 수 없는 양이니 장기 보관이 필수인데 방법을 모른다는 슬픈 현실! 할 수 없이  빨간색 창에 검색을  했다.   




#4. 심방골 주부의 손 


탁탁탁..."밤 보관법".  이렇게만 검색어를 쳤는데도 영상이 차고 넘친다. '뭐 다들 밤만 먹고사는 건가?' 할 정도로 많았는데 내용이 비슷비슷해서 뭘 따라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던 찰나, 한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 한번 안 나오고 손만 나오는 영상은 자막도 큼지막하고 쪼끔 촌스러운 분위기였지만 그 '손'에 신뢰가 확~ 갔다. 그 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랜 노동을 해온 투박하고 거친 손! 경험이 풍부하다는 걸 손으로 충분히 증명하고 있었기에 다른 것과는 비교가 안됐다.


그때 찾은 영상은 <심방골 주부>. 심방골 주부가 누구인가 하면 60이 넘은 전업 주부로 아침엔 농사짓고 저녁에는 아들이 영상을 찍어 올리는 집밥 레시피 영상으로 이미 유튜브에서 꽤 유명한 분이었다. 간단히 할 수 있는 집밥 레시피며, 살림의 지혜를 알려주는 다양한 영상들. 난 경험 많은, 노동으로 거친 그  '손'의 힘에 묘하게 끌려 자그마치 밤 8kg을 살짝 삶아 냉동실에 넣는 방법으로 그날 밤,  '밤 8kg'와의 전쟁을 끝냈다. 그 이후로도 가끔씩 필요한 레시피를 찾아보면서 경험으로 똘똘 뭉친 주름진 손 앞에, 아무것도 모르는 내 게으른 손이 많이 많이 부끄러웠다는 거.    




#5. 손들의 자취와 표정 


머리에서 '저만치' 떨어져 통제하기 힘들다는 손! 그래서 거짓말을 하기 어렵다는 손! 때론 죽겠다고 뛰어들었으면서도 지푸라기라도 꽉 잡고 싶은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손.


소설  <<저만치 혼자서>>에서 김훈 작가는 인간의 손이 소중한 테마라고 말한다. 노동하는 손, 사랑하는 손, 쓰다듬는 손, 주무르는 손, 주는 손, 받는 손, 부르는 손, 보내는 손, 기도하는 손, 연장을 쥐는 손, 악기를 쥐는 손, 쉬는 손, 고운 손, 그리고 이 세상의 수많은 손잡이에 남아 있는 손들의 자취와 표정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한다.


먼저 내 손의 자취와 표정을 생각해본다. 매일매일 밥 먹고, 카톡 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인데도 무심했던 나의 손. 그리고 내 손 너머로 많은 표정을 숨기고 있는 다른 사람의 손을 본다.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자취와 표정을 들여다보며 나 또한 부끄럽지 않은 손이 되고픈 마음이다.


저만치 손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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