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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의 부고

<부고의 사회학>, 이완수 작가의 그 문장

부고는 기억할 만한 사회적 가치가 있는 내용을 보여주는 작은 창문(small window)’이자, 특별한 역사적 순간을 개인의 삶과 연결해 해석하는 죽음의 사회학(sociology of the death)’이기도 하다.      

- 부고의 사회학, 이완수         


그렇게 빈자리에 또 아름다운 것들이 '가만히' 자리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 들꽃, 김완수 - / <<가만한 당신>>중 재인용



#1. 내 이름의 부고

 내 이름의 부고 문자가 왔다. 작가 수첩에 있는 9명의 동명이인 중 세 번째 작가의 부고. 부고 문자가 전송된 이후 작가 친구들과 후배들로부터 당황한 듯한 문자가 날아들었다. 머뭇거리는 말줄임표 안에서 조심스러운 문장들.      


“혹시나..... 해서  ”

언니... 아니죠?”      

ㆍㆍㆍ

"응. 나, 아니야. 난 김지연 4"


부고 문자가 뜬 그녀와 같이 일한 적은 없지만, 난 그녀가 누구인 줄 안다. 비슷한 작가 경력을 가진 터라 같은 프로그램을 시기만 다르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적도 있고 가끔씩 프로그램 스크롤을 보고 내 이름으로 착각한 지인들한테 연락을 받은 적도 있다. 그뿐인가. 언젠가는 이름 때문에 원고료가 잘못 들어와 돌려준 적도 있으니 동명이인이 많은 흔한 이름의 비애라고 해야 할까.


갑작스러운 부고의 그녀. 낯익은 ' 이름'이지만 내가 아닌 이름. 뒤에 붙은 숫자가 우리 둘을 구분하지만 서류상의 이름일 뿐 기분이 묘했다. 그녀는 과로사였다고 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무리하게 많은 일을 하다가 쓰러졌다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생길 수 있는 일을 누가 알겠나.  이름 때문일까. 남일 같지 않은  충격적인 부고 소식에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이름이 뭐길래.




#2. 이름 쓰기의 소심한 복수

첫 직장 직속 상사는 속물이었다. 사회 초년생의 으로 더욱 그렇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늘 타이밍과 포인트를 강조한 상사는 쓸데없이 힘 빼는 일을 절대 하지 않는 대단히 효율적인 사람이었다. 친절한 목소리로 말을 걸 때는 자랑을 하거나 껄끄러운 일을 시킬 때. 코드가 맞지 않아 기대도 없었는데 어쩌다 내가 낸 아이디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기 보고서에 넣을 때면, 나는 조금 분하고 많이 불쾌했다. 그래서  한  '소심한 복수'란 만드는 문서마다 내 이름을 악착같이 넣는 일. 나의 소심한 복수가 그에게 닿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게 속물 상사가 내게 남겨 준 유산은 ‘이름 쓰기’다.  이름으로 흔적 남기기. 방송작가가 된 후, 나는 완성 원고뿐 아니라 구성안, 편집 구성안, 사소한 아이디어를 담은 문서까지 누군가에게 뭔가 보낼 때면 크고 작은 서류마다 내 이름을 꼬박꼬박 써넣는 게 습관이 됐다. 그런다고 달라질 게 별로 없으면서 이름에 난 집착하는 걸까?          




# 3. 어느 배우의 수상소감

 지난 5월 백상 예술 대상에서 D.P의 조현철 배우의 수상소감은 남달랐다. 투병 중인 아버지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어 전한다는 인사는 이랬다.


아빠,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란 게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라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여러 사람의 ‘이름들’을 차례로 불러주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 국내에서 공해병을 처음으로 인정받은 박길래 씨. 홀로 작업하다 숨진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강제 전역된 변희수 하사 등의 이름을. 


이름을 부른다고 그들이 살아오는 건 아니지만 호명하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름을 시상식 소감으로 듣다니. 이름을 기억하 이렇게 큰 일이었나. 그 전 해인가축하무대에 무명배우들의 이름이 화면 가득히 별처럼 반짝이는 걸 보고 혼자 울컥했는데.      




#4.  A4 종이 한 장

나 홀로  '이름 울컥 병'에 걸려 부끄럽다고 고백했더니,  친구가 해외 콘퍼런스에서 겪은 일을 들려준다. 팬데믹으로  어렵게 마련한 자리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한 사람은 회사에서 가장 오래 근무하고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임원이었단다. 위, 아래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임원은 소통을 잘하기로 유명한데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행사 맨 마지막 시간. A4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와 읽기 시작했는데, 거기엔 현장 참석자들의 이름뿐 아니라 뒤에서 준비해온 비서진과 직원 그리고 당일 행사를 도운 영상, 오디오 담당자까지 빼놓지 않고 한 명 한 명 호명하면서 감사인사를 전했는데 그 장면이  너무 감동이었다고 한다. 그 임원은 행사 때마다 참가자들을 호명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데, 현장에서 한 번 맛보면 그 맛을 잊지 못한다고. 혼자 한 일이 아니라 모두 함께 했다는 의식,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 내가 한 일을 인정받는 느낌이 들고 자신도 닮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애사심이 살짝 들었다나. 별 거 아닌 일일 수 있지만 누군가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광경은  생각보다 감동적인 장면이라면서 '나 홀로 이름 울컥 병'에 공감해주었다. 




#5. 나 홀로 울컥 병

이름이 뭐길래. 나 홀로 울컥하며 집착하는지.  존재를 인정해준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걸 걸게 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존재의 그릇이 되는 이름. 내 이름에 가치를 부여하고픈 마음은 유행을 타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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